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새은/가정주부

2023-09-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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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브로

글을 쓴 지 얼마나 됐다고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글은 쉽게 써지지 않고 나의 지식은 참으로 부족함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얕은 생각조차 온전히 글로 적어내지 못한다는 답답함에 '어휴' 한숨을 내뱉을 즈음 '나의 질문'이라는 책을 만났다. 한동안 이 책은 나에게 보물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며 아껴읽었고, 부끄럽지만 식탁에 올려놓은 이 책에 남편이 둘째 이유식을 먹이다 쌀미음을 떨어뜨려 표지에 얼룩이 남았고 서로 니탓내탓하다 커진 게 미국에서의 첫 부부싸움이었다. 그만큼 소중했다. 깊이 있는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꼰대력은 없는 솔직하고 세련된 에세이라니!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미국 서부에 이주해서 살고 계시고 ‘최재천의 공부’라는 책에서 느껴진 교육에 대한 철학까지.. 괜스레 공통점을 찾으며 연대감을 느끼고 싶었다. 이런 분이 나의 회사선배, 육아선배였으면.. 인생생멘토로 가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남편의 사촌동생이 진로, 취업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하여 남편이 꽤 긴 시간 전화통화를 하고 들어왔다. 까다로운 자격증 시험을 긴 시간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게 남편은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며 어떤 책이 좋겠는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서로 읽었던 책들 중 도움이 되었던 자기 계발, 독서법, 돈에 관련된 3권을 동생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자신도 더 일찍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10년 전의 우리도 취업준비에 급급했고 단순히 어느 회사에 들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 지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취업 후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나가느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언제부터였을까 남편은 부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고 했고 나는 뭔가 하고는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 나에게 주는 다짐은 '꾸준함'과 '시나브로'이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조급함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가 정한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나의 질문’의 안희경 작가님은 무엇이 된다는 건 적어도 3년, 정말 무언가 되어있으려면 10년 이상 '시나브로'의 시간을 길게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육아에도 시나브로 마음가짐을 장착하니 한결 편안해졌다. 찬찬히 스며드는 우리의 시간이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되는 마음이 봄날 아지랑이 같이 살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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