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나효신/작곡가

2023-08-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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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이야기(2)

내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서 아름다운 길을 걷거나 미술관에 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에 온다. 쌀쌀한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에 거리에 나가면 누가 현지인인지 누가 관광객인지 옷차림을 보고 곧 알 수 있다. 춥다며 옷을 여러 겹 입고 외출했다가 갑자기 햇빛이 뜨거워지면 덥다며 옷을 벗어서 들고 다닌다. 종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여름 나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널리 알려진 명소가 많은데, 이 도시에 오래 살아 온 나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아름다운 장소를 몇 곳 알고 있고 실제로 그곳에 자주 간다. 그 중의 한 곳이 ‘철학자의 길’(Philosopher's Way)이다. 2013년에 완성된 이 길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철학자의 길이며 현재까지 미국내 유일한 철학자의 길이라고 한다. 독일의 매우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은 유명한 시인과 철학자 등이 걸었다고 전해 온다. 그러나, 시인이 아니면 어떤가... 철학자가 아니면 어떤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철학자의 길이 동네에 있다. 이 길은 나의 집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걷는 속도는 음악 용어로 안단테 - 빠르지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이다. 한 발씩 번갈아 규칙적으로 내딛는다. 두리번거리며 걷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생각을 하면서 걷기 때문에 주변 상황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에 열중할 적도 있다. 그렇게 걷다가 땅속에서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가 다시 기어들어 가는 그런 조그만 생명체의 움직이는 소리에 하던 생각이 끊기기도 한다. 생각에 너무 열중하면 걸음이 점점 느려지곤 한다. 새소리를 듣고...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은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떠다니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를 기억한다.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다.


생각하며 걷는다는 것... 생각할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대화를 해도 좋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은 친구 한 명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혼자 걸어도 좋은 길이다.

칠레의 시인이고 음악가인 빅토 하라(Victor Jara 1932년 – 1973년)는 ‘걷고, 또 걷고’(Caminando Caminando)라는 노래를 작곡해서 불렀다. ‘얼마 동안 나는 도달하고 있었을까… 얼마 전에 나는 떠났을까… 얼마 동안 나는 걸어 오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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