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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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나타난 곳과 시작된 곳이 다를 때

2023-08-09 (수) 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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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나는 여기 저기가 아프고 불편한데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도 없다네요...’
‘병원에서는 그냥 신경성이래요.’
일선에서 임상을 하다 보면 본인은 분명히 자각 증상이 있어 괴로운데, 병원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나타나질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환자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병원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을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몸의 아픔을 호소할까?
병의 증상이 나타난 곳이 병이 발병한 곳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몸에 생긴 이상의 원인이 꼭 문제의 증상이 나타나는 곳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기본적으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부분부터 세밀하게 자세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진료의 기본원칙인데, 이러한 현대의학의 검사법으로는 지금 증상이 나타나는 곳과는 다른 곳에 자리 잡은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은 보통 비염이 생기면 우선 콧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천식 증상이 나타나면 폐의 사진을 찍어 살펴보고, 피부에 아토피나 여드름이 생기면 피부조직을 직접 검사하여 그 원인을 찾아간다.

다행히, 병의 증상이 나타나는 곳과 병이 발병한 곳이 서로 일치할 경우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병의 원인을 찾기가 쉬워서 효과적인 치료를 시작할 수 있지만, 만약 지금 증상이 나타나는 곳에서 병이 발병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도 찾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현대의학의 검사와 치료는 거기서 중단되거나, 일단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대증치료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서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조직들을 하나로 묶어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접근법을 취하는데, 이는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은 생리학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한의학의 독특한 장부론에 근거하다. 서로 같은 기능과 역할로 연결된 조직은 그 자체를 하나의 장부로 보기에 피부에 이상이 생긴 환자의 호흡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비염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는 평상시의 폐활량에 대해 묻는다. 즉 코에서 나타나는 비염 증상이나 피부에 나타나는 병변의 원인을 폐에서 찾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숙련된 정비공이 머플러에서 나오는 매연의 원인을 찾기 위해 머플러가 아닌 엔진을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많은 경우, 우리 몸에 생긴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곳을 함께 들여다봐야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때가 있다.
또 한의학에서는 보통 병의 원인이 되는 부분과 증상이 나타나는 부분이 병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로 일치하지 않다가도, 점점 병이 진행되면서(퍼지면서) 서로 겹치기 시작한다고 본다. 그러니 병의 초기 단계에서는 오히려 증상이 나타나는 부분을 중심으로 세밀한 검사를 진행하는 현대의학식 진단법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오진을 더 자주 낸다. 즉, 병원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는데, 본인만 자각할 수 있는 이상증상이 있다면, ‘병이 아직은 깊어지거나 심각해 지지는 않았구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다.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병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병이 크지 않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눈으로 발견되는 구조적인 이상이 아직은 없더라도, 환자가 자각할 수 있는 기능적인 이상이 있다면, 이는 아직은 문제가 작아 찾지 못한다고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서 접근을 해야 한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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