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내다 보이는 뜰 앞은 해 묵은 나무들이 빼곡히 둘러쳐 있어 한낮인데 도 햇빛을 가려 시원함을 더해준다. 더구나 요즘처럼 비가 잠시 쏟아지다 금방 파란 하늘을 드러내 보이는 초 여름 날씨는 나뭇잎의 푸르름을 더욱 짙게 물들인다. 물먹은 잔디에도 윤기가 흐른다. 이러다 곧 8월이 되면 뜨거운 불볕아래 잔디가 누렇게 타 들어 갈지언정 아직은 푸르기만 한 여름의 풍경이다.
여름이 되면, 골목마다 어린아이들 소리가 요란스럽던 내 어릴 적 시절이 떠오른다. 학교 갈 나이가 될 즈음에 동네 친구 따라 처음으로 작은 문방구점을 가본 기억으로, 그곳은 얼핏 보아도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 같은 가게였다. 어쩌다 용돈이 생기면 학교 앞 문방구점으로 쪼르륵 달려가 보물처럼 사 들고 나오는 물건 중에는, 지금 생각하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함께 항상 연필 몇 자루가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손만 뻗으면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볼펜은 찾을 지언 정 연필을 찾는 일이 거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물며 몽당연필마저 아껴쓰던 절약정신이 이제는 궁상맞고 구차스런 불편한 시절이 되어 버렸으니…. 그러나 이따금 뭉뚱해진 몽당연필을 깎다 필통속에 키 재기 하듯 가지런히 놓여있는 연필을 보면 이런 저런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 난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나의 글 사랑은 때 늦은 나이를 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책상 앞에 앉힌다. 그 시시때때로 찾아옴은 길을 가다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음식을 만들다가, 혹은 잠을 자다가, 하물며 성당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가도 무언가 영감이 머리를 스치기만 하면 잊을 새라, 달아날 새라, 연필을 들고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때때로 나를 흔들어 깨우는 이 같은 무의식적인 감성이 없다면 무료하고 무미 건조한 노년의 시간을 어찌 풍요롭게 살 찌울 수 있으랴.
한때는 흐릿한 연필대신 볼펜을 사용해 글을 써본 적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단어나 문장을 수 없이 고쳐 써야 할 때는 노트지면이 금방 줄을 그은 자국으로 얼룩져 보기만해도 혼란스러워 다시 연필 쓰기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아예 나의 고질적인 글 쓰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내 책상 의자 밑, 그리고 거실 소파아래에는 항상 연필로 쓰다 지우고, 또 다시 쓰다 지운 까만 지우개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다. 누군가는 PC를 이용해 깔끔하게 글을 쓰면, 노안 걱정도 덜고 주위환경도 청결해질 터인데 굳이 연필로 지우개 흔적을 방마다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PC앞에 앉으면 낯설은 자리가 모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저만지 밀어내며 쫓아 버린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옛날 사람이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을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세상은 나날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변화 일색인데 아날로그식 우리네 전통방식으로는 매사에 적응해 가기가 역부족 일 때가 많다.
우연히 취미생활로 시작한 글쓰기에 발을 들여 놓고 보니 내가 나를 바라 보는듯한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사랑을 쓰려거던 연필로 쓰세요. 쓰다 쓰다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면 되니까요.” 오늘따라 노안의 침침한 눈으로 쓰다 쓰다 짧아진 몽당 연필과 지우개가 흐르는 세월 속 나의 일상을 그려주는 둘도 없는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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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워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