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가 러시아 하면 따라 붙는 별명의 하나가 ‘알코올중독 제국(alcoholic empire)’이다. 일단 술판이 벌어졌다 하면 끝장을 본다. 이게 러시아의 기본 술 문화다.
러시아인은 왜 술고래인가. 혹한의 날씨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다 보니 음주문화가 발달했다는 것. 다른 설도 있다.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를 잘한다. 그런 러시아인의 체질 때문이라는 거다.
각종 설들은 그렇다고 치고, 최근 들어 알코올 문제가 러시아에서 다시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민간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위층 관리들의 음주량도 엄청나게 늘었다는 보도다.
얼마 전까지는 보드카 한 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랬던 고위 공무원들의 근무 중 주량이 최근에는 한 병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
무엇이 이런 폭음을 불러오고 있나. 심한 스트레스다.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뒤따른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지배 계층의 내부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이는 고위당국자들의 폭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지난 3월, 그러니까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 들어간 후, 또 지난 6월의 용병부대 바그너그룹 프리고진의 반란사태 이후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정황에서 새삼 우려되고 있는 것이 러시아군의 음주문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병영에서 각종 음주사고가 급증, 상황이 날로 심해지면서 군 당국은 일부지역에서 금주령을 내리는 등 사태해결에 부심하고 있다.
왜 러시아군의 음주문제가 최근 들어 클로즈업되고 있는 것인가.
초기 인류는 상위포식자로부터의 공포와 불안을 떨치기 위해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술은 고대 전쟁에 나서는 전사들에게도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적당량의 술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극한의 공포심을 이겨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에서인지 제정시대 러시아군 병사들은 일정량의 보드카를 배급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술이란 게 그런데 그렇다. 어느 한계가 지나면 전투력을 크게 손상시켜 사상자 율을 오히려 높인다.
공포와 불안을 떨쳐낸다. 이를 위해 술 외에 사용되는 것이 또 있다. 마약이다. 러시아 군 사이에 번져가는 것은 과도한 음주만이 아니다. 마약상용이다. 아편, 헤로인, 마리화나와 각종 각성제류 마약들이 병영은 물론 러시아군 주둔지역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 소련 군의 침공으로 야기된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89)에서도 보았던 현상이다.
술과 마약에 찌든 병사들. 그들은 전선에서 어떤 행태를 보일까.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동료의 시신을 밟고 전진했다. 끝없는 파도 같았다.” 지난 봄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우크라이나 군 병사의 체험담이다.
동료가 죽어도 무엇엔가 취한 듯 무모하게 돌진해온다. 이런 바그너 그룹의 작전에 우크라이나군은 수적 열세에 내몰리기 일쑤였다. 순식간에 우크라이나군 20명이 바그너 용병 200명을 상대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인해전술’에 공포를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의심이 드는 것은 러시아군 사령부는 죄수 출신의 바그너 그룹 대원들을 총알받이로 쓰기 위해 술과 마약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탈주한 바그너 그룹 소속의 한 전직 용병은 “죄수들은 마치 고기처럼 대포의 총알받이가 됐다”고 폭로했다.
술과 마약에 절은 러시아군 병사들. 과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