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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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 줏대를 세운 두 성악가

2023-07-18 (화) 조광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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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김성호(33)씨가 지난달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BBC 카디프 국제성악 콩쿠르 가곡부문에서 우승했다. 가곡 부문에서는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자국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는 이날 슈만·본 윌리엄스·라흐마니노프 등의 가곡들과 함께 결선에서 ‘동심초’(김억 역시, 김성태 곡)를, 예선에서는 ‘고풍의상’(조지훈 시, 윤이상 곡)을 불렀다.

우승 소식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것은 그의 의상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회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노래를 불렀다. 주최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두루마기(Durumagi)를 영문으로 표기한 뒤 “많은 관객들이 그의 회색 한복에 그려진 한국 전통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나타냈다”고 전했고. SNS 상에는 그가 입은 한복을 확대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서양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주로 부르는 해외 콩쿠르에서 한복은 자칫 불리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 클래식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리는 기회가 되고, 관객들에게도 좋은 추억이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예선에서 ‘고풍의상’을 부를 때만 한복을 입으려고 했었다. 그 곡이 한복을 묘사한 곡이어서 한복을 입으면 관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결선까지 입었다”고 말했다.


‘고풍의상’의 노랫말이 외국인들에게 완벽하게 전달될 수 없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택해 예선을 통과했기에 필자 또한 기쁨이 컸다. 한국인이라면 시인 김억이 번역한 ‘동심초’의 가사는 대부분 알지만 조지훈의 ‘고풍의상’의 가사는 모르는 분들이 많기에 소개한다.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 당혜/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를 숙이고……”

이 시는 소재 자체가 한국적이고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다. 고택과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를 예스런 말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보여주며, 우아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전아한 우리말을 사용하여 사라져가는 풍물과 전통적인 생활에 대한 애수를 노래한 시이다.

김성호씨가 마지막에 “조오타~!”라는 추임새로 노래를 마무리해 관객들의 흥을 이끌어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청명하고 서정적 고음이 돋보이는 리릭(lyric) 테너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빼어난 성악가이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했던 조수미씨를 떠올린다.

조수미씨는 워너뮤직 산하 에라토 레이블과 전속계약을 맺고 1994년 앨범을 발매하기 전, 자신의 앨범에 우리 가곡 ‘보리밭’을 넣고 한글로 ‘보리밭’이라고 쓰는 조건을 내세워 관철시킨 바 있다. 그녀는 세계무대에서 애국심과 자긍심으로 언제나 당당했다. 조수미와 김성호는 한국문화의 줏대를 굳건히 세우며 K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 모쪼록 이들이 아름다운 한국문화 전도사로서 오래오래 세계인의 사랑을 받길 기원하며 김성호의 우승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조광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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