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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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노 우범지역에서 펼치는 도시선교

2023-07-12 (수) 김재억 굿스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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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스푼 칼럼

시카리오(Sicario)는 ‘시카’라는 단검으로 이스라엘의 침략자 로마인을 암살하던 유대인 열심당원을 뜻한다. ‘셀롯’(Zealot)이라 불린 열심당원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통치자요 주(Lord)라는 종교적인 신념을 갖고 로마 제국에 굴복하지 않았다. 도리어 무력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한 급진적 당파다. 가슴에 서슬 퍼런 살해용 검을 품고 친로마 성향의 유대인 변절자, 매국노들, 침략의 원흉인 로마인을 암살하였고 세금 납부 거부와 민중 봉기를 획책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시카리오’(Sicario)는 총포로 무장한 잔혹한 마약 카르텔 암살자를 말한다. 드니스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이 만든 영화 ‘시카리오’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텍사스 주 엘 파소와 멕시코 국경도시 소노라 주의 후아레스 시, 노갈레스, 누에보 라레도, 마따모로소 등에서 암약하고 있는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 시날로아(Sinaloa), 로스 세타스(Los Zetas), 걸프 카르텔(Cartel del Golfo)를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토안보부와 CIA, FBI, DEA, CBP 등이 합동 작전을 펼쳤던 사실적 사건을 기초하여 제작된 영화다.

영화는 비바체(Vivace, 아주 빠르게)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피닉스 시의 채들러 구역의 한적한 주택, 멕시코 소노라 카르텔의 미국내 마약 밀매 조직의 집을 FBI 요원들이 급습한다. 벽 뒤편에 엽기적으로 살해당한 삼십여구의 시신들이 하나, 둘 발견되는데, 심하게 부패하여 악취를 풍긴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 국토안보부는 CIA 책임자의 지휘아래, FBI 요원, 아프카니스탄에 참전했던 특수부대 요원들,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의 능수능란한 암살자를 영입하여 대대적인 섬멸 작전에 돌입한다. 그들의 전략은 불법 마약 루트로 은밀히 사용되고 있는 터널 발굴 및 차단, 수천만 달러의 마약 밀매대금 압수, 라이벌 조직원 납치, 살인, 시체 유기 수사, 그리고 사악한 마약 두목 검거 및 조직 해체를 위한 입체적인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잔혹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 이기기 위해 미국이 비밀리에 시행한 작전이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는 ‘차도살인’ (借刀殺人) 전술이다. 콜롬비아 메데인의 마약왕 파울로 에스꼬바르는 멕시코의 사법부 연방 경찰 요원이었던 가야르도와 손을 잡고 멕시코-미국 국경을 통하는 모든 마약 밀매사업에 협업하기 시작했다. 이후 에스꼬바르가 라이벌 칼리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조직이 붕괴당하자 멕시코 나르꼬들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면서 마약 생산, 유통, 판매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메데인의 암살자 알레 한드로가 소노라 카르텔 두목을 살해하며 영화는 끝난다.

독립 기념일 연휴가 시작된 지난 토요일 오전, 컬모 폴스처치의 라티노 도시빈민 지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10여명의 라티노 보라초(Borracho, 술 주정뱅이)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흉측한 문신이 팔과 목 주변에 가득한 시카리오들이, “코카인을 팔아 떵떵거리며 살고, 멋진 황금 권총을 사서 폼나게 한번 살다 가라..."는 ‘마약 꼬리도(corrido)’ 노래와 죽음의 성자 ‘싼타 무에르테’(santa muerte)를 흥얼거리며 노려 보는 그곳은 흡사 멕시코 국경도시 전쟁터 같은 살벌함이 번진다.

험상궂은 헤페(jefe, 두목)에게 조심스레 요청한다. “라티노들을 위한 예배와 구호 사역이 곧 시작 될 수 있도록, 음악을 끄고, 술을 자제해 달라” 설득해 보았지만, 당장 꺼지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망연자실 사역을 준비할 때쯤, 페어팩스 경찰차 두대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경찰들은 술병을 뺏어 쏟아버렸고, 공공 장소에서 음주와 고성방가는 범죄에 해당한다며 해산을 종용하자 마초들이 슬그머니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난장판은 순식간에 거리 예배 처소로 바뀌었다. 사악한 노래는 끝났고, 술과 마약에 취해 객기를 부리던 무서운 조폭들이 사라진 그곳에, 배고프고 선량한 이웃들이 자리한다. 한인과 라티노들이 섞여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했고, 생명의 양식과 함께 준비한 응급 식량과 생필품들이 정성껏 나눠지며 사역을 마칠 수 있었다.
도시선교 (703)622-2559

<김재억 굿스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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