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38대 뉴욕한인회장 경선이 드디어 오는 6월11일 거행된다.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라는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의 한인회장을 선출하는데 한인사회가 반으로 분열된 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서 도대체 선거가 무엇인지, 그 유래와 역사가 궁금해졌다.
선거(選擧, election)는 대중이 공직자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 결정 절차로 대개 투표를 통해 진행된다. 선거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도시국가나 게르만 부족사회에서 시작되었으며 중세 시대를 거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과 같은 통치자들을 선정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기원 전 754년경 고대 스파르타에 왕과 권력을 나누는 에포로스라는 집정관이 있었다. 이 5명의 에포로스를 뽑는 선거권과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이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있었다. 최초의 민선선거였다.
고대 아테네는 6세기초 시인이자 개혁가인 솔론(Solon)이 만든 솔로니아 헌법에 의해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뽑았다. 아테네는 재산 소유에 따라 시민을 4개의 계층으로 나누었고 최하위층은 선거권이 없었다. 이후 페리클레스가 투표 참여 계층을 확대하며 가난한 시민들도 정치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알다시피 13개주의 영국 식민지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여 우승함으로 탄생한 나라이다. 1776년 미국은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했는데 선거권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다.
21세 이상의 남성으로 재산소유권을 지닌 자만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미국 여성들은 제1차세계대전 동안 국가를 위해 적극 기여한 후, 1920년 8월 국무장관이 투표권에서 남녀를 철폐한다는 내용의 제19차 헌법개정안에 서명했다.
또 영국은 1913년 에밀리 데이비슨이 잉그리시 더비 경마대회에서 트랙에 내려가 달려가는 말에 밟혀 4일 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희생이 여성참정권 운동권자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1928년 여성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 최초의 민주선거는 1948년 5월10일 총선거다. 기본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이다. 당시 통계에 의하면 유권자 813만여 명 중 784만여 명이 등록, 748만여 명이 투표해 95% 이상이 선거에 참여했다. 선거권은 만21세 이상(현재 만18세) 국민 모두에게 주어졌다. 또한 궁금한 것이 아라비아 숫자나 글을 모르는 문맹자는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택할 수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의 경우 도자기나 항아리 조각에 이름을 써냈는데 글을 모르는 자들이 대신 써달라고 했다가 결과가 조작된 경우가 있었다. 또 각 배심원에게 작은 돌 2개를 주었다. 하나는 그냥 돌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돌이었다. 투표시 첫 번째 항아리나 두 번째 항아리에 자신의 생각을 표시하는데 어떤 돌이 어느 항아리에 들어가는지 모르는 비밀투표였다.
스파르타의 경우 선출직 관리 후보자들이 돌아가면서 큰 집회 장소에 나타나는데 박수와 환호로 찬반표시를 했다. 이때 보이지 않는 다른 방의 심사위원들이 소리의 양을 듣고 승자를 선택한 환호투표, 즉 함성선거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한글과 한자가 병기된 투표용지가 있었고 한국전쟁이후 남은 탄피를 활용해 만든 투표용구가 있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시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는 국민 유권자는 숫자 대신 막대 기호를 세로로 직접 적어내야 했다.
미국이나 영국, 남성이나 여성, 유색인종 등 공평한 참정권을 갖기 위해 길고도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했다. 그에 비해 한인들은 쉽게, 별다른 노력 없이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귀한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는 참여, 공정, 화합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상모략이나 흑색선전, 유언비어, 가짜뉴스, 투표조작이야말로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 아니라 민주주의 무덤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1인 1투표, 현명한 선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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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