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진등(無盡燈)] 휴

2023-05-25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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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올해부터 부처님오신날에도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어, 3일간 연휴라고 한다. 쉬는 토요일인 27일에 부처님오신날이 있어,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 된다고 한다. 우연히도 이곳 역시 메모리얼 데이 주말이여서 같은 날짜에 휴일이다. 365일 휴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일 없어 날마다 휴일인 사람들에겐 휴일이 더 생기든 말든, 아무 상관 없겠지만, 휴일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겐 연휴가 기쁜 소식일 수도 있겠다. 휴일이란 일반적으로 일을 안 하고 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현대인 대부분은 정작 휴일이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냥 쉬면 되는 날이, 소문난 맛집 가기, 드라마 쵤영지 같은 유명한 장소 방문 등등, 뭔가 반드시 해야 해서, 휴일이 진정한 휴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잘 쉬었다고 에스엔에스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서, 무얼 하고 휴일을 보내냐가 민감한 사안이 된 것이라 한다. 즉, '쉬는 일'이 문자 그대로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 하는 날보다 휴일에 더 스트레스 받고 고된 노동인 사람도 많다고 하니, 어불성설이라고 해야 할지. 이 중에게 있어선 휴일 하면 제일 먼저, 고전 영화 '로마의 휴일'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로마의 휴일'은 간단히 말해, 어떤 공주님이 바쁘고 지루한 외교 일정에서 벗어나, 하룻 동안 로마에서 일반인처럼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내용이다. 영화니까 말이지, 뭔 일탈이 행복이겠는가 만은, 그 철 없는 공주의 하루 동안의 쉼, 은 행복해 보였다. 암튼, 휴일의 휴, 는 나무 아래에 사람이 기대어있는 형상의 글자이다. 즉, 휴일이란 일탈 같은 것도, 에스엔에스에 보이는 것도 아닌, 그렇게 두 다리 뻗고 나무 아래 앉아, 아무 일 하지 않고 쉬는 것이다. 요즘 처럼 에스엔에스에 인증, 해야 하는 휴일이라면, 그건 휴일이라고 할 수 없다. 쉬어도 그것이 노동같이 여겨진다면, 진정 쉬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않는 걸 휴식라고 할 수도 없다. 일할 때는 좀 쉬어야 한다고, 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매일 쉬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괴롭다고 하는 걸,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말했다. '노동은 휴식을 즐긴다. 인생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양자가 필수불가결 하다.' 진정한 휴식이란 건강한 일이 있을 때의 얘기다. 일이란 생계를 위해 신체적 정신적 노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 노동에 지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 두 다리 뻗고 기댈 수 있는 그런 날이 휴일이다. 쉼표처럼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일 때 의미가 있지, 매일이라면 휴일일 수 없다. 물론, 늘 노동이어도 마찬가지다. 공휴일을 일부러 정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환기를 위해, 삶에 잠시 쉼표를 찍자는 것이다. 휴일에 무엇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쉴 휴, 이다. 휴, 다행이다, 하고 숨을 뱉을 때 쓰는 단어도 휴, 이다. 삶에는 휴, 하고 숨을 토해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시간을 강박을 가지고 에스엔에스에 올려야 할 거리로 법석을 떠는 것은 휴와 거리가 멀다. 쉬는 일조차 남의 잣대에 휘둘릴 일인가. 왜 그러는 지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편히 쉴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왜 쉬는 것도 스스로 못하고 남의 시선에 빼앗기고 사는 지, 깊이 사유해볼 일이다. 날마다 일 없이 쉬는 것이 정말 괴로운 사람들 입장에선, 휴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그 행복이 소중하단 걸 모르고, 대부분 안 해도 되는 일, 보여주는 일 하느라 사서 고생이다. 보여주기,는 구속이다. 깨달아 걸림 없는 대자유를 얻으신 분, 바로 그분을 기리는 날이 부처님 오신날이다. 대체 공휴일로 하루 더 쉰다니, 모처럼 만에 좀 멀리 숲속의 산사에라도 혼자 가서, 고요한 대자유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디, 무엇,이 아니다. 일을 하시든, 노시든, 무얼 하시든, 당신 뜻대로 주체적으로, 그 누구의 잣대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느곳에서든 '수처작주' 하는, 자유로운 날을 만드데 있다. 휴, 그것이 휴일이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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