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움과 향수에 젖은 영혼이 깃든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

2023-05-1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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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외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와 아들이

▶ 외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와 아들이 10여년의 세월과 대륙을 넘나들면서 깊은 감정에 우아하고 민감하게 그려

‘그리움과 향수에 젖은 영혼이 깃든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

소영(왼쪽)과 동현이 한국의 소영의 죽은 애인의 집을 찾아 왔다

한국인 이민자의 소속감과 정체성 찾기를 아담하면서도 힘차게 그린 캐나다 영화로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탄 ‘미나리’를 연상케 한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감독 앤소니 심이 각본을 쓰고 조연까지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반 자전적 작품이다. 작년 토론토영화제에서 토론토 영화 비평가협회에 의해 최우수 캐나다 영화로 뽑혔고 부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탔다.

3막 형식으로 된 영화는 외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10여년의 세월과 대륙을 넘나들며 감정 가득하고 진지하고 주도면밀하며 우아하고 민감하게 그렸는데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절제미로 다루어 더욱 깊은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움과 함께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영혼이 깃든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으로 이민자들인 우리 모두가 마음 열고 동감하게 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영어와 한국어 대사로 됐는데 디지털을 이용해 주문해 볼 수 있다.

제 1막은 1990년대 초. 고아로 자란 소영(최 승윤)은 커서 사랑하게 된 애인이 자살을 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어린 외아들 동현(도현 노엘 황)을 데리고 밴쿠버 교외로 이민 온다. 심지가 굳은 여인인 소영은 공장에서 일하며 동현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붓는다. 동현은 초등학교에서 왕 따를 당하며 엄마가 점심으로 싸준 김밥과 김치 때문에 ‘라이스보이’라고 동급생들의 조롱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 이름도 담임선생의 조언에 따라 데이빗으로 바꾼다. 이러니 동현이 학교에 안 가겠다고 엄마에게 떼를 쓰는 것도 당연하다.


소영은 소영대로 공장에서 외톨이인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자기에게 유난히 친절하게 굴며 구애의 마음을 보이는 한국인 공장 매니저 사이몬(감독 앤소니 심). 제 1막은 소영과 어린 동현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올빼미 안경을 쓴 노엘 황이 혀를 차게끔 연기를 잘 한다). 그리고 장면은 동현이 고등학생이 된 때로 넘어가면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동현(이산 황)과 소영의 관계가 제 2막에서 펼쳐진다.

소속감에 시달리는 동현은 몇 친구와 함께 대마초를 피우면서 10대 특유의 반항기질을 보이는데 따라서 소영과의 관계에도 마찰이 생긴다. 그러나 소영과 동현은 안으로는 굳게 연결되어 있다. 모자간의 사랑은 질긴 것이다. 이런 중에 소영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나쁜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소영은 동현을 데리고 자살한 애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간다. 아들과 함께 자신의 본향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제3막은 소영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자기의 죽은 애인의 가족을 처음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화해와 포용의 너그러움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소영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는 이 제 3막이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흐른다. 어두움 가운데서도 밝은 빛이 비쳐지는 희망이 잠겨 있는 데 이를 거의 감지할 수 없게끔 민감하게 처리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소영과 동현은 고국을 찾아와 비로소 고향과 정체성의 본연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비롭고 연민하는 듯한 솜씨로 작품을 연출했는데 이와 함께 돋보이도록 아름다운 것이 연기다. 최승윤의 차분하면도 꼿꼿한 연기와 이산 황의 내면의 힘이 가득한 자유로운 연기가 아주 좋다. 그리고 촬영과 음악도 좋은데 특히 한국에서 찍은 촬영이 큰 화폭에 그린 그림처럼 보기 좋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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