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나는 단톡방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2023-05-18 (목) 이하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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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들 학교 학부모 미팅에서 킨더부터 아이패드를 교구로 사용하는 것에 찬반 투표를 받았다. 참석한 학부모 전원이 찬성했다고 한다. 패드를 활용한 교육에 유익한 점도 많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수업이 익숙해진 아이들을 좀 더 쉽게 가르치고 학업 수준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앞선다. 어릴 때는 다양한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데, 스마트폰 화면 터치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나 역시 7살 아들에게 재밌는 영상으로 선행교육 시키고 싶다는 유혹에 자주 빠졌다. 하지만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는 느리더라도 그 나이 때에만 키울 수 있는 감각 경험을 늘려주고 싶어서 디지털 기기는 가급적 멀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둘째 딸을 낳고 난 뒤, 정작 내 핸드폰 스크린 타임이 계속 늘었다. 주범은 각종 단톡방이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약속 잡아 지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더욱이 미국에 온 지 이제 1년도 되지 않아, 지인도 몇 없다. 한국의 가족, 친구…등 각종 단톡방에서 온라인 속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외로움을 달랬다.


엄마가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익숙해져서일까? 아들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 핸드폰에 찾아봐.”라고 말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핸드폰으로 주문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손을 뻗어 물건을 잡기 시작하는 딸이, 자꾸 내 핸드폰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그래서 단톡방 나가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바로 정리되는 단톡방도 있었지만, 쉽게 나가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한국인,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나가기 버튼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그동안 내가 그곳에서 나눈 사진과 짧은 메시지가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 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양해를 구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단톡방도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찜찜하게 남아있었지만,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카카오에서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일반 채팅에 적용할 예정할 예정이라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들이 꽤 많았나 보다.

최근 WHO는 코로나19 관련 최고 수준의 공중 보건 경계 태세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이전으로 일상이 회복되고 있는 요즘, 나부터 오프라인에서 온 감각으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축복을 찾아 나가야겠다.

<이하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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