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을 쳐다봐도 뒷산을 쳐다봐도 온통 아카시아꽃 향기로 마음이 울렁거렸던 시절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달이다. 아카시아꽃은 4월 하순에서 5월 하순 사이에 피어 있다.
만발한 아카시아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메릴랜드 체사픽 만 블루 크랩(Maryland Chesapeake Bay Blue Crab)의 시즌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선구자 역할을 한다. 실바람 솔솔 타고 온 바로 그 아카시아꽃의 향긋한 냄새가 알이 꽉 배어 있는 메릴랜드 체사픽 만(Bay)의 블루 크랩을 생각나게 하고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했을 때가 블루 크랩의 맛이 시즌 중 최고 좋을 때다. 그러니 만발한 아카시아꽃을 보면 블루 크랩을 먹고 싶은 식욕이 새벽에 수탉이 홰(Rooster’s Red Comb)를 치며 울듯이 돋아날 수 밖에.
5월이 되면 동네 마트 어디에서나 살아서 파닥이는 신선한 블루 크랩을 볼 수 있다. 체사픽 만 블루 크랩은 USA Today 신문이 선정한 ‘미국을 대표하는 Best 10’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껍질이 선명한 사파이어 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 4월에서 11월 말까지 크랩을 잡지만, 5월부터 8월까지가 피크이다. 그래서 매년 5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블루 크랩 맛 여행을 떠난다. 메릴랜드 블루 크랩 중 체사피크 만 주변에서 잡은 블루 크랩이 가장 맛있고 유명하다.
메릴랜드 사람들에게 여름철은 맥주와 블루 크랩의 계절이다. 블루 크랩은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쪄서 주로 맥주와 함께 먹는다. 크랩용 시즈닝(Seasoning)인 올드 베이(Old Bay)를 넣어 찌면 풍미가 진해진다. 그냥 찐 후 올드 베이를 뿌려 먹도 맛이 좋다. 버터를 녹여서 찍어 먹기도 한다.
맥주를 마시면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맥주와 크랩은 찰떡 궁합이요 환상의 짝꿍이다. 일일이 까서 먹기는 귀찮지만 그만큼 맛도 좋고 소화도 잘돼서 까먹을 가치가 있다. 먹다보면 쉽게 까서 먹는 요령도 생긴다.
크랩 시즌이 되면 크랩 마니아들은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한다. 메릴랜드 체사픽 만 다리(Chesapeake Bay Bridge)밑 주위에는 정해진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만큼 양껏, 마음대로 실컷 크랩을 먹을 수 있는 ‘All You Can Eat' 크랩 전문집도 있다.
블루 크랩의 암컷 중 메이트(Mate)를 하지 않은 처녀 크랩을 셀리(SALLY)라고 부른다. 셀리의 배 부분을 자세히 보면 영어의 ‘V’자 모양을 하고 있다. 수컷과 메이트를 한 아줌마 암컷을 숙(SOOK)이라 부르며, 배 부분에 형태가 ‘V’자에서 ‘U’자로 변했고 색깔도 변해있다. 수컷은 지미(JIMMY)라고 한다. 배 부분 ‘T’자 무늬로 쉽게 선별할 수 있다.
미국은 수컷 크랩(Male Crab)을 더 선호한다. 가격도 암컷(Female Crab)보다 더 비싸다. 살이 더 많기 때문이다. 크랩이 풍년인 경우 어부들이 암컷은 바다에 버리고 수컷만 잡는다. 반면에 한국은 알이 꽉찬 암컷 크랩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개인적으로 뱃속에 알이 꽉 찬 암컷 크랩을 더 선호한다. 미국에서는 가격도 더 저렴하다. 크랩은 보름달이 뜰 때는 먹이를 먹지 않고 물 위로 올라와서 연애만 하기 때문에 살이 꽉 차 있지 않다. 달이 훤하게 뜰 때를 피해서 크랩 여행을 떠난다.
바다와 갈매기들, 환상적인 베이 브리지(Bay Bridge), 좋은 사람들, 그리고 식탁에 수북이 쌓여있는 먹음직스러운 블루 크랩과 시원한 맥주가 있으니 메릴랜드 크랩 마니아들에게 정말 신나고 미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메릴랜드인들에게 맥주와 블루 크랩이 빠지면 여름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블루 크랩은 메릴랜드의 명물이며 상징이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와 독립기념일 연휴 때가 피크 타임이며 가격도 가장 비싸다.
살아있는 싱싱한 블루 크랩을 집에 가지고 와서 양념게장이나 간장게장으로 만들어 먹으면 엄지척이다. 간장게장을 일회분씩 소분하여 비닐백에 넣어 냉동고 깊숙이 보관하면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귀한 반찬이 된다.
동네방네는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숨이 막힐 지경이고, 체사픽 만 바다에는 알이 꽉 찬 블루 크랩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목청껏 부르고 있다. 자, 어서 떠나자! 블루 크랩의 고향 체사픽 만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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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