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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진분수

2023-05-04 (목)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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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일어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자기의 분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 국어를 잘해야 하고, 산수를 잘해야 한다고 한다.
국어를 잘하려면 주제파악을 해야 하고, 산수를 잘하려면 분수를 잘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분수는 쉽게 보이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분수는 진분수가 있고, 가분수가 있다.
진분수는 분모가 크고 분자가 작은 것이고, 가분수는 분모는 작은데 분자가 클 때 가분수라고 한다. 분수를 인생으로 표현하면 어떤 것도 잘 감당하는 인생이 진분수이고, 늘 어렵고 힘들고 비틀거리는 인생이 가분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살면서 당하는 상처와 실망감은 진분수일 때 보다는 가분수 일때가 많다. 생각보다 현실이 잘 조화가 되지 않을 때, 기대가 너무 큰데 성과는 좋지 않을 때, 마음만큼 몸이 받쳐주지 못할 때 삶이 힘들게 된다. 곧 진분수는 분모가 크면 분자를 감당할 수 있어 가볍고 쉽고 그렇게 힘들지 않다. 바탕과 기본과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관리와 마음과 뜻이 튼튼하면 어떤 상황과 현실과 실천과 계산과 환경을 이겨낼 수 있다.

돈없으면 구태여 남의 양복을 빌려서 멋있게 차려 입고 밖에 나가서 음식을 먹고 음식 낼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옛날 선비들은 설령 고기를 먹지 않았어도 고기를 먹은 것처럼 이를 쑤시는 모습까지 보이는 그런 자기관리를 했다.
그것이 다 옳다 말할 수는 없지만 없기 때문에 먹고 싶어서 남의 집에 들어가 훔치거나 빼앗지도 않을 뿐 더러 먹지 못해서 마음에 아쉬움이 오래 남게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진분수의 삶이다. 살면서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생각대로 척척 이루어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 눈에 드러나게 보이는 그런 화려하고 위대하게 보이는 사람의 인생도 다 이상과 현실이 다 맞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미국 이민자로서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남에게 눈을 속여가면서 거짓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못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말할 수 없고,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처럼 위장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경험하며 살고 있다. 먹는 것,입는 것, 말하는 것 그 자체가 허영이 아닌 실체인 것이다.

때로는 우리 마음에 유혹이 오고, 혼란이 올 때가 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과 희망과 꿈이라는 차원에서는 이해할 면도 있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감당하기 힘들어 내려 놓아야만 하는 가분수가 된다.
가분수는 반드시 내려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에 이고 갈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12:3)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환영하면서 한마디 조언을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새 옷걸이가 묻는다.“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지요?” 헌 옷걸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짧지만 긴 인생 가운데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너무 많으면 가분수가 된다. 작은 것이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고,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으로 가볍게 산다면 그 인생은 진분수의 인생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진분수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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