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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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찬가, 아델라이데 순애보

2023-04-12 (수)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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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오면 알 수 없는 설렘과 애잔한 연민이 저며온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첫사랑 소녀를 연모하여 알프스 산자락 봄바람에 잔설이 남아있는 틈 사이로 피어나는 꽃, ‘아델라이데 OP 46’을 작곡했다.
투박한 성격으로 실연의 기록이 더 많은 베토벤에게 첫사랑, 그 연인의 이름마저 아델라이데로 붙였으니 봄이 불러온 로맨티시즘의 발산이었을까. 스토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상징처럼 따라붙는 ‘엘리제를 위하여’보다도 ‘아델라이데’를 한 수 더 올려 감상한다.

봄은 꿈과 사랑을 불러다 준다. 동백꽃이나 매그놀리아(magnolia, 목련)가 잎사귀보다 먼저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풍길 때면 봄이 희망을 밀어오는 신비함마저 느껴진다. 봄은 화사한 아침햇살처럼 탄력 있게 삶의 의미와 묘미를 안겨주는 신의 선물이다.
우리 국민의 인기 애창곡의 하나는 ‘봄날은 간다’이다. 가사 자체가 약간의 풍을 쳐서 풀어보면 제법 심오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리그(Edvard Grieg)의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Lied)’도 ‘봄날은 간다’를 따라붙지 못할 정도이다. 헨리크 입센의 시극 ‘페르귄트(Peer Gynt)’의 부수음악, 페르귄트를 향한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그려낸 노래. 그 겨울 지나 봄이 가고 봄이 또 가고… 우린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


우리 애창곡 ‘봄날은 간다’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불러도 좋고 지금 이 시간에 백조들 짝지어 노니는 호숫가에 연인과 벤치에 앉아 조용히 들어도 맛이 나는 노래일 것 같다. 참으로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는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이 가는 것만 같다.
“연분홍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떠나보낸 애절함 속에 양 미간이 뜨끔해 온다. 올봄 나의 봄날은 가까운 어느 부부의 ‘러브 스토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송 집사는 기분이 좋을 때나 우울할 때나 ‘봄날은 간다’를 부르곤 했다. 서 권사가 6년간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남편 송 집사는 줄곧 아내 서 권사의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주위 친지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병구완이 지극했다.
송 집사는 모처럼 외출을 하더라도 저녁 5시까지는 반드시 귀가했고 술도 끊어버렸다. 병원에 갈 때마다 직접 차를 몰았다. 서 권사는 꽃을 좋아했다. 서 권사의 체력이 부칠 때는 인근 꽃피는 가로수 길을 부축하여 짧게나마 꽃을 함께 감상했다.

송 집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예배를 거른 일이 없었다. 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뒷바라지가 힘들었어도 내색하는 일이 없었다. 서 권사는 늘 자신의 악화되는 병세보다도 오히려 챙겨주는 남편 송 집사에게 “무리하지 마세요”, “고마워요”하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애석하게도 부인 서 권사가 눈을 감았다.
송 집사는 서 권사가 떠난 지 반년이 지났어도 아내가 생존해 있을 때처럼 희로애락을 초월한 듯 생활 자세가 담담하다. 그에게서 보이는 평상심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서 권사와 송 집사가 엮어낸 ‘현대판 순애보’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사랑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 교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달 말쯤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송 집사를 위로하며 ‘봄날은 간다’를 색다른 감회에 젖어볼 요량이다.
과거 이미자가 불렀던 ‘동백 아가씨’의 가사 중에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이 빨갛게 멍이 들었네…” 이 구절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던 적이 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리움에 지쳐서 또 울다가 지쳤을까. 뭐가 그렇게 애절했기에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쳤었단 말인가. 꽃잎이 빨갛게 멍이 들다니.
빨간 열정이 내팽겨쳐서 얼마나 아팠기에 멍이 든 것 같다고 이미자가 울었던가를 오래도록 되짚어 본 적이 있다. 어느 틈엔가 나는 ‘동백 아가씨’보다 ‘봄날은 간다’에 더 심취해 있다.

서 권사는 지금 송 집사의 영혼 속에 알프스 산기슭 잔설 틈 사이에 피어난 ‘아델라이데’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살아 있다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역설하는 대신 ‘송 집사의 봄날’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단언했을 것만 같다. 내게 있어서 올봄은 송 집사의 아델라이데 러브 스토리로 한껏 로맨티시즘에 취해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571)326-6609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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