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살다보면 정신이 나간 듯 머리가 텅빈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서일까. 모를 일이다.’ 나만 그럴까?’ 그런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나도 그래!’라고들 한다. 우리는 사실 예전에 비해 ‘제정신으로 살아가는가?’를 질문을 해보면 하나같이 ‘글쎄’란 답변을 한다.
월요일인가 하면 어느새 토요일이고, 아침인가 했는데 저녁이 되고 하루의 시간은 분명히 24시간인데 초침은 힘들지 않고 정확하게 숫자를 넘긴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생명줄을 줄여가고 ‘알았지!’ 하며 지켜보고 있다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지만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달려가는 목숨이란 말인가! 엊그제 어린 손자 손녀가 기어 다니며 젖을 먹었는데 벌써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할아버지 나 여기 왔어요!’ 하고 줌으로 인사를 한다. 여기가 지구야 달이야 신기하고 감탄할 노릇이다.
예전에는 현실이 아니면 미치거나 자신의 살을 꼬집어 보며 ‘내가 정신이 나갔나 아니 제정신인가?’하는 일이 떠오른다. 아니면 꿈이냐 생시냐?하고 했는데 세상이 많이 발전하고 달라졌는데 간혹 나를 잊고 정신을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 언제 집사람이 혼자서 깔깔대고 손뼉까지 치고 웃다가 박장대소를 하길래 들여다보니 스마트폰을 바닥에 놓고 허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나갔군!’ 하던 생각이 난다.
누가 말하기를 ‘미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문명이기에 모든 걸 목숨걸고 사는 존재가 되었나 의문이 간다.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일까.
간혹 길을 가다가 혼자서 낄낄대고 웃다가 소리지르다가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 분명히 실성한 사람이 아니다. 즉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이 분명하다. 스스로는 제정신이라고 항변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걱정일까! 바쁘다는 이유로, 편리하다는 핑계로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을 잃는 노예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주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험준한 곳에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의 일화 중에 중간에 쉬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일이다. 이유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꿈쩍도 안하고 몸은 여기까지 왔는데 영혼은 따라 오지 못했다는 답변이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숨이 차는 현상이 바로 그 해답이다.
음악에도 음표와 쉼표가 있고 박자가 있는가 하면 빠르게 느리게의 속도가 있어 아름다운 멜로디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면 인생도 사계절이 고루고루 거쳐 가야하는 단계가 아닌가! 씨를 심어야 잎이 나고 열매를 얻고 다시금 땅을 다지고 새 봄을 맞는 이치를 아는 사람을 현인이라 하지 않는가. 빨리가 뺨치는 시대에 느림은 제정신이 아닌지 모르지만 농부들은 ‘제철의 과일이 제맛이 난다’고 하는 말이 새롭다.
한밤에 잠이 달아나서 낮에 도서관에서 생각난 글자락을 맞추어 보는 것도 제정신이 아닌지 모르지만 간혹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가 싶다.
간혹 밤과 낮이 구분이 되지않아 시계를 보아도 구분이 되지 않는 어리둥절한 시대에 일하면 낮이고 잠자면 밤인 시대에 재택근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는 초고속 시대에 편리함도 빠른 것도 일상화된 시대에 살아 남은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에 ‘알리바바의 도적’이란 소설에 도적떼들이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다가 은신하는 굴 근처에서 ‘문 열어라!’ 하니까 큰바위가 저절로 열리는 문장이 떠오른다. 지금은 AI(인공지능시대)가 사람을 대신하는 놀라운 시대에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다면 정말로 ‘욕심은 한이 없다’는 말이 진리임이 틀림없다.
간혹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미국속의 한국이 맞는 말 같다. 언젠가 지구는 하나 세계 각곳에 한국인이 살다보니 한국 사람과 한국말로 한국 음식을 먹고, 여행하고, 사업하고, 생활하고 자식 키우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한국계 미국인이 되겠지만 세계가 인종 혼합시대가 되리라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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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명 / 매나세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