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맨틱한 동경과 집념, 갱스터 영화의 기운담긴 현대판 동화’

2023-03-1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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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세 영화 ‘수쩌우 강’(Suzhou River) ★★★★½ (5개 만점)

▶ 사실과 상상을 마구 뒤 섞어,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지녀…해답은 보는이의 상상력에 달려

‘로맨틱한 동경과 집념, 갱스터 영화의 기운담긴 현대판 동화’

마다르가 메이메이(왼쪽)를 찾아와 당신은 나를 피해 강에 투신한 내 애인 무단이라고 말한다.

샹하이 태생의 중국의 ‘제 6세대’ 감독 루 예(각본 겸)의 데뷔작으로 로맨틱한 동경과 집념에 관한 현대판 동화다. 사실과 상상을 마구 뒤 섞어 얘기에 얘기를 중첩하는 식으로 서술해 풀기가 쉽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데 이런 애매모호함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으로 그 해답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로맨틱한 영화를 잘 만드는 홍콩 감독 웡 카-와이 영화와 히치콕의 ‘환상’(Vertigo)을 연상시키는 음산한 시적 무드를 지닌 작품으로 스타일 멋진 갱스터 영화의 기운을 느끼게 만든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사랑의 얘기를 마치 영화 속의 해설자가 자기가 꾼 꿈을 토로하듯이 풀어낸 환상적인 영화로 유혹적이며 신비한 분위기를 지녔다. 샹하이의 어둡고 더럽고 추한 뒷골목과 이에 대조적인 원색 네온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찍어낸 이미지와 음습한 분위기가 스산하게 자극적인 느와르 영화다. 2000년에 개봉 된 영화로 이번에 새 복원 판으로 나와 17일부터 23일까지 Nuart 극장(11272 Santa Monica Blvd.)에서 상영된다.

영화는 처음에 끝내 얼굴을 화면에 내보이지 않는 해설자가 샹하이를 가로지르는 ‘가장 더러운 강’ 쑤저우를 따라가면서 이 강의 내력과 강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소개 하면서 시작된다. 강은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얘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 얘기들 중의 하나이다. 얘기들 중의 하나인 두 젊은 남녀의 투신자살의 얘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해설자는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비디오 촬영을 해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 어느 날 후진 술집 ‘해피 태번’의 주인으로부터 큰 물탱크 안에서 수영하는 인어를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긴 금발 가발을 쓴 아름다운 인어로 탱크 안에서 수영하는 여인의 이름은 메이메이(쩌우 순). 쑤저우 강을 소개할 때 나온 인어가 새삼 생각나면서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인어가 떠오른다. 비디오 촬영가는 첫 눈에 메이메이에게 반하고 이어 그와 메이메이는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가 지속적인 것은 아니다. 메이메이는 애인에게 ‘당신은 내가 없어지면 영원히 그리고 당신 평생을 날 찾겠는가’라고 물으면서 하나의 사랑의 얘기를 들려준다. 이 사랑의 얘기는 비디오 촬영가 자신의 사랑의 얘기에 그가 상상하는 사랑의 얘기를 섞었다고 봐도 좋고 또 실제로 있는 얘기라고 봐도 무관하다.

또 하나의 사랑의 얘기의 주인공은 거친 과거를 지닌 과묵하고 무표정한 오토바이 배달자 마다르(지아 홍쉥). 그가 최근에 배달하는 것이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옅은 미소를 짓는 소녀 같은 모습의 무단(쩌우 순이 1인 2역을 한다). 마다르는 무단의 밀수꾼 아버지가 집으로 여자들을 데려 올 때마다 무단을 무단의 고모 집으로 배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단에게 무감하던 마다르는 서서히 무단의 미소에 젖어들면서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마다르가 갱으로부터 몸값을 받기 위해 무단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따르자 무단이 도주해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무단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로부터 3년 후 교도소에서 출소한 마다르는 샹하이 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무단을 찾는다. 마다르는 ‘해피 태번’의 물탱크 안에서 수영하는 메이메이를 발견, 메이메이를 무단이라고 간주한다. 이어 마다르는 계속해 메이메이를 찾아와 그에게 자기와 무단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메이메이가 무단이라고 단언한다. 마다르는 또 비디오 촬영가도 찾아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면서 메이메이가 자기 사랑인 무단이라고 말한다.

과연 ‘팜므 파탈’(femme fatale)인 메이메이와 무단은 한 여인인가 그리고 마다르와 촬영가도 한 사람인가. 아니 과연 마다르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와 무단은 비디오 촬영가가 자기 상상으로 만들어낸 연인들인가. 성숙하고 은근히 선정적인 메이메이와 순진한 소녀 모습의 무단 역을 쩌우 순이 돌연 변이를 일으키듯이 해낸다. 지아 홍쉥의 무감하고 무표정한 연기도 운명적인 영화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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