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흔히 기대되는 희망, 바람 등이 있을 땐 생기가 도는가 보다. 또 살아 있다는 표시도 되는 성싶다.
간다, 만다는 토론도, 변경도 수없이 하던 끝에 일단 가기로 결정, 첫 관문을 통과했더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일정 짜는 게 예전같이 않아 힘이 드니, 아예 안 가기로 했다가 그래도 살아생전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고 이번에 못 만나면 저 세상엘 가서나 재상봉할 지도 모르는 친척, 지인, 친구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미치니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번 여행을 성사시켜야겠다고 굳게 마음 벼른다.
몇 년 전 고국 방문 시 스승이신 조홍식 옛 교장 선생님께서 몇 년 후 다시 와 뵙겠다는 제자의 말에 “성길이 보기 위해서도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겠네”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각인되어 있다.
자세한 의논을 위해 여행사 담당자를 만나 설명을 듣고 비행기표 구입과 여행일정을 완결하고 여행 담당자로부터 이 메일로 송부 받으니 이제 여행을 곧 할 것이라는 실감이 난다.
절친에게 고국 체류 일정을 알려주고 특히 만나보고픈 친구 명단을 작성하니 50여명이 훨씬 넘으니 동창회를 해야겠군, 한다. 가까운 친척들 상봉도 기다려진다.
서울의 인사동, 명동거리, 이태원 참사현장, 저 건너편으로 남산 탑이 보이는 서울 외곽 북악산 관광도로,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성북동 길상사 방문,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성북동의 ‘국시집’ 등 맛집 순례도 기대된다. 다만 형제추당집이 대가 끊겨 폐업이 됐다니 애석하다.
딸아이는 벌써부터 남한산성을 가보고 싶다는 주문이다. 데이트하던 청평호반도 다시 한 번 둘러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친의 고향, 가평 현리의 수목원과 남이섬도 시간이 되면 서울에서 당일치기 여행지로 빼놓고 올 수가 없다.
옛날 화신 백화점 근처, 이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유명 한식점은 강남으로 이사했다지? 냉면 잘못 먹고 배탈이 난 한동안 냉면을 먹지 않던 생각이 난다. 물론 계동 1번지 일제 시 6.10만세사건을 주도한 모교 중앙학교 숙직실도 방문하고자 한다.
전에는 유럽여행도 직접 필자가 짜서 아무 일 없이 다녔는데 이제는 여행사에 의뢰, 모든 걸 다 해준다는 데도 힘겨운 것 같으니 세월의 탓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팔도 여행의 목적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자라서 학교 다니고 졸업 후 군의관 복무, 집사람도 교편생활로 서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생활이었고 특히 남들이 대부분 다 가본 제주도를 못 가봤기에 이번에 제주도도 둘러볼 겸 겸사겸사다.
특히 필자는 몇 년 전 설악산 백담사 방문시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 등정계획이 폭설로 수포로 돌아가 아쉬운 마음이 상당히 컸는데 이번 여행 중 마지막 지점이 속초, 설악산이라 이곳에서 여행 본진과 결별, 우리 가족만 속초에 3일간 더 머무르고 필자만 날을 하루 잡아 대청봉 등정을 계획하고 있다.
가족들은 한 달 후 미국으로 돌아오겠지만 필자는 허락이 된다면 좀 더 체류하며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가산리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고향(상주인구 8만 명인 고향을 관광객 연 20만 명으로 먹여 살린다는 죽어서도 고향사랑이다), 춘천의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통영이 고향이라지만) 문학관을 찾고 싶다.
또 정약용 선생 유배지 18년(?)동안 수많은 불후의 저서(목민심서,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등)들을 남긴 곳인 전남 강진, 토지의 배경 경남 하동과 진주, 섬진강 상류시작점 전남 구례, 하동과 구례의 5일장 지점이며 조영남의 유명한 노래 ‘화개장터’, 젊은 날 집사람과 여행했었던 덕유산 무주구천동과 문씨 본관 전남 남평, 집사람 심씨의 경북 청송, 모친의 한씨 청주 등도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한편 성지순례하면 외국 성지만을 흔히 생각하나 실제 서울지역에도 특히 천주교 성지가 경기도퇴촌면의 천진암, 서울 명동주교좌 성지성당, 이벽<한국천주교 창립터-종로구 청계천로 105>, 김범우의 집터<중구 을지로 66 하나은행 본점앞>, 종로 가회동성당 등 순례 1코스가 둘러볼 성지들이다.
이번에 한국 지도를 보면서 지리공부를 많이 했고 잘못 알고 있었던 지역의 위치며 거리감각도 많이 수정해야했던 곳이 많았음에 크게 놀랐다. 강원도 정선이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놀랐고 경북 하회마을도 가까웠고 목포는 생각보다 아주 먼 남도 끝에 있음에 놀랐다.
남해와 해남은 자꾸 헷갈리고 바로 근처인줄 알았더니 꽤 거리가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여수와 남해는 지척지간, 하동, 진주, 구례는 삼총사 마을 같았다. 가슴이 계속 설렌다. 아! 내 조국 대한민국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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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