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걸 손꼽아 기다리는 손주녀석들이 우리집에 올 때면 엄마 아빠가 금지한 간식을 마음껏 먹게 해 주다가 며느리에게 볼멘소리를 듣곤 한다. 아이들이 우리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내 무기인 아이스크림 바(Bar)를 꺼내 준다. 물론 하나씩만 고르게 한다. 아이들은 딸기맛, 초콜릿맛,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중 하나를 골라 먹는다. 선택하지 못한 다른 맛 아이스크림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면서. 나는 이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저 녀석들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선택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선택’이란 걸 참 싫어했다. 엄마와 옷을 사러 가서도 두가지 색깔의 옷이 있으면, 두가지를 다 손에 쥐고 안 놓으려 했다. 그러면 엄마에게 웬 욕심이 그리 많냐며 야단치곤 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나는 싫다 못해 참 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뭐든 길지 않게 고민하고 명료하게 선택하는 남편을 보면 부럽다. 가끔 남편에게 “이게 올바른 선택이 아니면 어쩌냐”고 걱정하면 남편은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어떻게 모든 것을 다 갖느냐”고 담담하게 답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어쩌면 수백번,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아버지는 신중, 또 신중하라 하셨고 늘 완벽주의자라 실수가 없던 분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너무 신중해서 오히려 시기를 놓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도대체 뭐가 답인가? 아버지를 꼭 닮은 나는 심히 고민했다.
나는 의학을 전공한 탓인지, 쉽지 않은 미국의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들까지 생각하며 메디케어 클라이언트(Medicare Client)들을 완벽하게 도와드리려 하다보니, 번아웃(Burn out)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뭐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냐며 안쓰러워 했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평생 바쁘고 허둥대던 나의 삶을 놓고 기도해 보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을 지도 모르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신중함도 필요하되, 양쪽을 다 갖겠다는 허무한 욕심을 내려놓고 포기한 한쪽이 불러올 수 있는 불이익을 받아들이고, 선택한 것을 노력으로 이루어 냈을 때 딸려올 결과에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부끄럽지 않은 완벽한 삶을 이루어 가는 성숙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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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