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름 돈을 건네받는 순간 은은한 기운을 느꼈다. 역시 내 눈은 못 속이지.25센트 실버 쿼터. 니켈과는 다른 광택, 은이 들어가 있다. 함량 90%. 196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은을 넣지 않았고 그 구분은 동전의 앞뒷면이 아닌 가장자리로 확인할 수 있다. 은이 들어간 건 테의 색상이 균일하다. 니켈 섞인 1965년 이후의 주화는 두 줄이 보인다.
은화를 수미산처럼 쌓아둔 미 동부의 이 은화 재벌이야 새삼 대단할 것은 없다.
만 ‘1959’라는 아라비아 숫자에 그만 울컥했다. 친구야! 동갑내기 친구야, 환갑 훌쩍 넘도록 그 긴 세월 어떻게 살아왔니…. 육십 성상에도 그다지 닳고 닳은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막 살지는 않았나 봐. 상태가 A급이니. 그렇다면 값이? 우정을 돈으로 환산하는 이 못난 친구를 잠시 용서하렴.
너를 몰라본 사람들에게 너는 고작 25센트, 껌 반의 반 통도 못 사고 주차시간 5분 어치에 불과하지만 널 알아보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6불 이상으로 몸값이 무려 스무 배 넘게 뛴단다. 하다 못해 널 녹여서 은으로 무게 달아 팔아도, 겁 먹지 마 그건 불법이니까, 3불은 나와.
그동안 새카맣게 어린 것들하고 똑같이 취급받으며 느꼈을 모욕감을 상상하면 내가 다 가슴이 아프구나. 병장이면 다 같은 병장이냐, 아니지. 우리 태어나던 해의 25전이면 할 수 있는 게 많았지. 물가상승률 감안하면 지금 돈 2달러는 더 됐어. 껌 두 통은 샀지. 자, 이제 너를 아는 내가 있으니 궂은 옛일일랑 잊고 좋은 것만 기억하자꾸나.
네가 나온 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나니? 자, 들어봐. 빌리 조엘이라고 피아노 쳐서 먹고 사는 피아노 맨인데 그 형이 부른 노래에 ‘We didn’t start the fire’라고 있어. 송창식의 ‘가나다라’와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을 합친 듯한 가락에다가 불장난 들킨 애들이 변명으로 늘어놓는 일종의 알리바이 송이야. 그해 그해의 신문 헤드라인 제목으로 가사를 썼어. 1949년에서 1989년까지. 그중 1959년을 기억하는 키워드들은 이래.
Buddy Holly, Ben Hur, Space Monkey, Mafia, Hula Hoops, Castro, Edsel is a no-go
버디 헐리는 그해 비행기 추락사로 떠난 가수야. 아메리칸 파이에도 나오잖아. 아니 지저분한 그 영화 말고 돈 맥클레인 노래, “the day the music died.”
벤허는 찰튼 헤스턴의 마차경주 기억나지? 스페이스 몽키는…. 아니 배관공 손에는 몽키 스패너고 이건 우주선에 처음으로 원숭이를 태워 올린 거. 그렇게 살아온 걸 확인하고 사람을 태워 십년 뒤에 아폴로로 달에 간 거잖아. 희생양 대신 희생원. 마피아는 그해 업스테이트 뉴욕에 각 파 두목들이 회합해서 서열을 정하고 조직을 다졌다는 것이고.
돌리고 돌리고 훌라 후프가 그해 선풍적인 인기였다네. 나도 집에 하나 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돼. 걸칠 허리가 없어. 카스트로는 너도 알지? 쿠바 혁명. 그때 단절된 왕래가 회복되는데 참 오래도 걸리네. 그리고 에젤은 그해 포드에서 나온 자동차야. 창업주 헨리 포드의 아들 이름을 땄는데 개 망했어. 몇 년 못 가서 단종됐지. 현대가 포니 대신 몽구, 삼성이 갤럭시 대신 재용,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생각해 봐. 안 망하면 이상하지.
미국은 그렇고 내가 태어난 나라는 어땠냐고? 글쎄 사라호 태풍 하나 기억나고…. 자유당 정권에 대통령은… 승만리인데 저 노래에서는 이듬해 1960년 가사에 나와. 왜냐고? 독재 하다가 쫓겨났잖아. 바티스타 독재 쫓아낸 앞 절의 카스트로랑 운을 맞춘 건가? 글쎄.
참, 조엘 형이 깜빡하고 빼먹은 게 하나 있는데 1959년은 내 여자친구 바비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해이기도 해. 너도 걔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