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에서 찍은 게 아니고~’
창 너머 새파란 수평선 흰 구름 흐르는 바다위에 유람선이 두둥실 떠있는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 오렌지카운티 부동산 업계의 큰손인 여성 동문의 답톡이다. 꼭 멕시코 엔세나다 크루즈에서 찍은 거 같다고 했던 것이다. 비 개인 하늘이 하도 푸르러 21마일의 ‘비치 블러바드’를 주욱 남으로 내달려 도착한 헌팅턴 비치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폭우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만 온 게 아니었나보다. 아닌 게 아니라 1861-62년 겨울 대홍수 이후 캘리포니아에 찾아온 162년만의 최악의 겨울 폭우가 가까스로 그치고 나니 어느새 물이 다 빠졌는지 배수구에 얼기설기 걸쳐진 나뭇가지가 아니면 언제 비가 왔었나 할 정도로 거리는 뽀송뽀송하다.
작년 말에는 엄중한 팬데믹 현실에서 유난히 많은 비까지 내리며 또 한 해가 가는 감정에 보통 북받치는 게 아니었는지 어느새 1월의 하순에 접어들기까지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온가족과 함께 또는 강도의 흉탄에 비극적으로 생을 달리한 동포들과 이웃들에 관한 슬픈 보도가 많이 이어져 아직까지 가슴이 먹먹하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다고… 아무리 코너에 몰린 낭패감에 사무쳤기로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하고 그리 허무하게 세상을 등져야 했는지… 볼펜을 입에 문 나는 4층 사무실 창밖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지리했던 겨울장마도 이렇게 지나가나 한숨 돌리는 순간 우연의 일치인지 5개월이나 끌었던 커머셜 딜도 클라이언트가 무사히 SBA 론을 펀딩 받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의 케이스는 1년 순수익이 물경 50만달러가 넘는 우량한 캐시플로의 자체 비즈니스가 포함된 부동산 딜이었음에도 불구, 론 신청 후 펀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고객이나 브로커리지를 담당한 나나 보통의 인내력으로는 견디기 어려웠을 만큼 복잡한 여정이었다. 박사까지는 아니라도 거의 석사 논문을 쓸 정도의 분량이라 할 만큼 수없이 제출해야 했던 자료 또 자료…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잘 팔로업 해준 고객이 감사할 뿐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올해부터 새로운 공휴일로 지정한 계묘년 음력설이 지난주 지났다. 40년전 우리 집으로 시집와 10여년 전 형을 먼저 보내고 홀로된 51년생 토끼띠 큰형수가 72세가 되는 해 아닌가.
살아 계시면 97세이실 우리 어머니의 띠였던 호랑이해 임인년 2022년은 내 생애 가장 멋진 해 중의 하나였다. 살다보니 볕들 날도 있다고 미주 한국일보에 지난 6년간 게재한 수필을 모아 책으로 발간해 난생 처음 슬그머니 저자가 되었는가 하면, 한국에서 두 누이를 초청해 멕시코 크루즈, 라스베가스, 후버댐, 그랜드 캐년, 데쓰 밸리, 유니버설 스튜디오, 게티 미술관 등을 모시고 다니며 누이들이 마치 소풍간 초등 여학생들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중한 가족애를 되새길 수도 있었다.
그 뿐인가. 4년전 무릎에 이상이 왔을 때 수술해야하나 낙담하며 부득이 중단했던 주말 20킬로 달리기를 꾸준한 자가재활을 통해 다시 극적으로 재개하면서 악몽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아울러 평생의 고질이라 그냥 그렇게 살다 죽어야하나 했던 헤모로이드 출혈성 빈혈도 아침 화장실에서 우연히 찾은 한 박자의 긴 여유를 통해 극적으로 자가 완치의 비결을 알아내기도 한 놀라운 한해였었다.
고백컨데 가끔씩 외로움이 찾아올 때에는 나도 모르게 긴 한 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 정도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참기름 고추장에 잘 비벼낸 따끈한 돌솥 비빔밥 같은 아주 맛있는 한해였던 것이다. 계묘년 새해에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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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 팔로알토 부동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