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자랑을 할까? 인간은 자랑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자랑하지 않고는 못 사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른다. 자랑이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뽐내는 행위이다. 남편 자랑, 아내 자랑, 자식 자랑, 부모 자랑, 학벌 자랑, 인물 자랑, 돈 자랑, 등 명사 뒤에 자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다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랑거리가 있다. 이 세상에 자랑거리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자랑이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랑은 곧 자기 사랑과 긍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자랑의 내용도 다르다. 특히, 60대 이후 부부 모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 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주 자랑이다. 많은 시니어들은 스마폰에 저장해 둔 손주 사진을 자주 쳐다보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유치원이나 학교 끝날 시간이 되면 손주 데려 오기 위해 모임에서 한 명 한 명 슬며시 빠져 나가 자리가 텅 빈다. 팔불출 말을 듣더라도 나도 손녀바보 자랑으로 흠뻑 빠져 지내는 그룹에 끼고 싶다.
과년한 딸이 남자 친구가 생겨 결혼하게 되어 크나 큰 기쁨이었다. 결혼 후 바로 임신 소식을 듣고 10개월 뒤에 출산을 했을 때, 딸이 결혼했을 때만큼 기뻤고 감사했다. 하늘의 천사보다 더 예쁜 공주 손녀가 태어났으니 금상첨화요, 지상 최대의 행복이었다. 손녀가 태어난지 5일 만에 딸네 집에 가서 손녀와 첫 만남을 했다.
갓 태어난 생명체는 모두 신비하다. 아름답다거나 귀엽다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표현되기 어려운 감정이다. 신비의 근원은 모든 새 생명체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다. 닮는다는 것은 종족 보존 본능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닮는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보석같은 손녀를 처음 본 순간 얼굴 윗 쪽은 아비를 닮고, 아래 쪽은 어미를 닮았다. 피는 못 속이고 DNA는 숨지 않는다.
공주 손녀가 고고지성 울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개월이 되었다. 병원 신세지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다. 갓난 아기의 세계 공통어인 옹알이 노래는 진즉 배웠고, 서툴지만 뒤집기도 곧 잘 한다. 고개는 아직 힘이 좀 부족하여 오랫동안 완벽하게 들고 있지 못한다. 가장 잘 하는 짓은 예쁘게 잘 웃는 것이다. 젖살이 뽀얗게 붙은 손녀의 부드러운 볼을 만지면 촉감이 솜사탕보다 좋다. 내 품 가득히 손녀를 안고 있으면 고장난 시계처럼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딸의 집까지는 먼 거리도 아니지만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태어났을 때와 백일 때만 직접 가서 손녀를 봤다. 딸이 하루가 멀게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웃고 또 웃으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공주 손녀의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잠자는 모습, 뒤집는 모습, 옹알이하는 모습, 눈 맞추는 모습, 우유 먹는 모습, 장난감 피아노를 발로 차는 모습 등을 보면 엔도르핀이 솟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들은 신비 그 자체다. 전송받은 여러 사진 중에서 몇 개 골라 플라스틱 사진 케이스에 각각 넣어 눈에 가장 잘 보이는 방 앞 콘솔 테이블(Console Table) 위에 진열했다. 방에 들락거릴 때마다 여러가지 표정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공주 손녀는 나의 멘토(Mentor)와 같다. 말 못하는 아기도 본능적으로 스스로 노력하여 차근차근 천천히 단계별로 배워가면서 커간다. 갓난아기들의 만국 공통어인 옹알이를 배운다. 낑낑거리면서 뒤집는 법을 배우고 손발로 기어가는 법을 배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노력하고 연습하여 아장아장 걷는 법을 배운다. 인생살이도 패키지(Package) 상품처럼 이것저것 왕창 한꺼번에 성취되지 않는다. 단계별(Step by Step)로 하나하나(One by One)씩 순리대로 달성된다는 진리를 손녀가 상기시켜 준다.
공주 손녀는 할배의 보물이고 자랑이고 희망의 샘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보약이다. 성장하면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줘야지. 유치원도 데려가고 졸업식에 가서 사진도 찍어 줘야지.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든든한 후견자가 되어 줘야지. 이러한 꿈을 성취하려면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할배가 손녀바보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날씨가 좀 풀리면 하루 빨리 공주 손녀보고 와서 또 자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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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