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코로나 빗장을 풀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23-01-13 (금)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해 말 중국은 새로운 조치를 통해 동태적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했다. 올해 1월8일부터는 코로나19로 닫힌 국경을 전면 개방하고 격리 조치를 폐지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에 따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시적으로 6억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1월 말 약 20억 명이 이동할 최대 명절인 설날을 계기로 바이러스는 지방과 농촌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발표하는 사망자 통계를 믿지 않은 채 중국인들은 해열제 사재기 등 자구책을 찾으며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사실상 집단면역 정책으로의 전격적 전환은 지난해 11월 중순까지만 해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바꿀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토록 자랑했던 코로나 제로 정책을 치료 약품 확보, 의료 체계 확충, 중증자 관리, 지방 공조 등 준비 없이 몇 단계를 건너뛰고 황급히 변경했는가.
첫째,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경제적 압력이다. 방역 부담을 지고 지방채 발행을 남발한 지방정부는 재정 위기에 내몰려 있고 외부로부터의 원자재 보급이 봉쇄돼 공장을 가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수경제를 살린다는 것도 공염불이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외자기업들도 중국을 떠나겠다고 짐을 싸고 있었다. 둘째, 청년들을 중심으로 백지 시위, 노동자 파업 등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물리적으로 막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심지어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은 새로 출범한 시진핑 리더십 자체를 향하고 있었다. 중국식 코로나 방역으로 사회주의 정치의 우월성을 설명해 온 서사도 빛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과학 방역이 발언권을 얻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양식 있는 의료인들은 중국산 ‘물백신’으로는 오미크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어렵고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접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질서 있는 퇴각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모험을 무릅쓴 채 코로나 봉쇄를 풀었다. 그 과정에서 생명권이 모든 인권에 우선한다는 중국식 방역 논리와 보건의료 거버넌스 수준의 민낯이 드러났고 ‘100년 만에 찾아온 대변국’이라는 위기 담론을 통해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지배 방식에도 균열이 생겼다. 무엇보다 “치국을 전 부치듯 뒤집는다”는 비판처럼 하루아침에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고 기업 규제가 경기 부양으로 바뀌었다. 급기야 시 주석이 이번 신년사에서 “사람마다 요구가 다를 수밖에 없고 같은 일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지만 정책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정책 전환은 대안 부재 상황에서 늦었지만 불가피했다. 다행인 것은 혼돈 속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상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감염된 사람을 중심으로 바이러스 공포에서 벗어나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중국인의 입출국 규모가 늘고 있으며 일부 보복 소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분위기 쇄신을 위해 보아오포럼 등 대형 국제 행사와 광저우 아세안 게임 재개 카드도 만지고 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공포가 없다면 봄이 오기 전에 소비절벽과 고용위기가 줄어들고 공장 문을 다시 여는 과정에서 이른바 ‘차이나 런’ 현상도 일부 사그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슬며시 ‘동태적 방역’이라는 단어를 문건에서 삭제했지만 여전히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며 오히려 방역 경험에 따른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보다 동원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무모함을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시장과 민심의 바다로 제대로 뛰어들어 집단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초격차에서 ‘절연(insulation)’으로 나아가는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대응 방식이기도 하다. 길은 멀고 어깨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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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