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시작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2023년의 세월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歲月)이라는 한자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탄생하는 모든 피조물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시간 안에서 자라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시간의 지배를 벗어난 피조물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23년에도 우리는 시간의 굴레 안에 살고, 시간의 속박을 받으며 살 것이다.
그리스말로 시간에 관련된 단어는 카이로스(Kairos)와 크로노스(Chronos)는 두 개가 있다. 카이로스의 기본적인 의미는 장소, 상황 혹은 시간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점(decisive point)을 말한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드문’, ‘진귀한’이라는 의미도 있다.
‘카이로스’의 결정적인 상황에 관한 생각은 기원전 8세 그리스 시인이었던 헤시오도스 이후 많은 미묘한 차이로 발전해왔다. 예를 들면, 위험, 결과, 호의, 기회, 유리한 것, 성공 혹은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 ‘카이로스’라는 용어는 비록 행운의 긍정적인 한 면이 가장 공통적일지라도 긍정적인, 중립적이고, 혹은 부정적인 함축과 함께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덧붙이자면, 카이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이름이다. 시간의 신이자 기회의 신이라 불린다.
반면 ‘크로노스’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로 ‘시간’, ‘시간의 과정’, ‘시간의 변화’를 가리킨다. 다른 의미로는 시간의 ‘부분이나 단편’을 나타내기도 하고, ‘측정’ 또는 ‘기간(span)’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더 큰 의미로는 날짜를 사용할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느 특정 시기, 예를 들어 위기의 순간, 졸업의 순간, 취업의 순간, 결혼의 순간 이런 경우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 크로노스는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에 가 있는 기간은 크로노스라고 한다면 전역하는 순간은 카이로스의 개념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당연히 두 단어의 개념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 자신을 맡기고 수동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아무 의미 없이, 하루하루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시간일 뿐이다.
이러한 시간의 사용은 자신을 더욱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삶에 의욕이 없게 만들고,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이 자신을 너무 싫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누가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겠는가?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살아가보자. 어쩔 수 없이 시간의 구속을 받지만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한다면 결코 자신이 시간의 구속을 받는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된다.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순간, 순간의 찰라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순간 순간에 의미 부여와 주어지는 순간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생각과 노력과 실천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성공과 실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난과 칭찬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려움과 걱정 역시 문제 되지 않는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3년, 의미있는 순간과 시간(Kairos)으로 삶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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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철 볼티모어 한국순교자천주교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