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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편지

2023-01-10 (화) 이동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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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어떤 종교·정치·사상에서 자유스럽습니다”
흔히 글쓰기는 쉽고 간결하고 읽는 재미가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데 가끔 글을 쓰는 내 마음은 무겁기도 하고 암울할 때가 있어 완성한 글을 버릴 때가 많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학부에 총명한 슬기로 쇄금(碎金)을 노가리(씨를 뿌림)하는 눈부신 칼럼에 주눅이 들린 탓도 있지만 위화감(違和感)의 내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어떻게 입에 오르내리는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더욱이 정치사나 종교의 우상에 도전하는 것은 내 배움의 지적 수준과 독서량으로서는 한참 부족함을 느껴 자숙자계(自肅自戒)하지만 게으르고 편안한 오늘은 내일의 후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몽당 연필심을 다시 깎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워싱턴 고명하신 분들의 정치사·일반사·종교사에 대한 눈부신 칼럼들은 저명한 외국 석학들의 주장을 너무 풍부하게 인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감탄을 주고 신선한 읽을거리를 주지만 못 배우고 독서량이 부족한 나의 국적 없는 입맛같은 무미건조한 졸필은 옆동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볼멘소리인 선술집 잡담 수준이어서 맷돌처럼 맴돌기 일쑤입니다. 특히나 종교, 정치의 침튀기는 장군멍군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설화(舌話)는 고무신을 신고 이끼긴 돌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입니다.

눈위를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처럼 내 못난이 글이 어딘가 남게 되어 읽는 이의 마음에 역겹고 아니꼬운 비웃음과 증오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비극이나 정치, 이동원의 주인은 이동원인데 신이 주인이라는 종교의 우상에 도전하는 것은 나의 영원한 숙제이며 밝혀야 될 소명입니다.
바야흐로 작금의 세상사는 맘몬이 전지전능이 되어 돈이 예수가 되었고 “예수야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협박 공갈 설교에 아멘으로 찬성하여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다락방의 최후 만찬처럼 종교의 최후 만찬을 보는 듯 합니다.


더욱이 정치·군사·경제·종교·대국의 다원이즘(Dawinism)은 공(公)이어야 할것이 공(空)이 되어 사람이 사람을 시켜 잡아먹게 하고 잡혀먹히는 잘못된 국제 질서가 인간사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네모난 삼각형의 모순된 논리로 평화의 강물은 막히고 가짜가 진짜를 이기는 세상은 이미 익숙한 듯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빨갱이가 된다면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을 찍은 1,614만명의 국민들은 뭐가 되는지 늙은 육삭(六朔)동이들의 싸이코패스 품바타령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도 깔깔거리고 웃을 노릇입니다. 옛날 구리무 장수같은 내 글을 읽고 텍사스에서 보내주신 장문의 손편지를 조심스럽고 정성을 들여 잘 읽었습니다.

가끔 내 글을 읽은 독자분들의 격려 전화를 받았지만 달필로 빼곡히 채운 네 장의 손 편지는 고등학교 연서 이후 처음입니다. 더욱이 영어(囹圄)의 몸으로 신문 읽기가 낙(樂)인 듯한 이00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고등학교 3학년때 형무소에서 푸른 옷에 5098 죄수 번호를 달고 4개월 반 가다식(둥글게 찍어낸 밥)인 구메밥을 먹었습니다. 당시 영등포 문래동 제6관구 사령부 보통 군법회의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경찰의 이를 부러뜨린 죄목은 특수폭행, 그래서 퇴학을 당한 나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입니다. 그렇게 배우지 못한 불행은 피가수(被加數)의 운명이 되어 나의 불행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스트레스를 빈 뱃속에 주(酒)님을 가득히 모시고 백마강 달밤에 일입편주 간(肝)을 둥둥 띄워 나의 님프(Nimph)가 즐긴 소녀의 기도를 듣고 호남가를 넘어 달나라 별나라를 여행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자랑거리이자 웃음거리가 되는 내 평생 감격의 일반고시의 합격은 미국의 운전 면허시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추한 내 과거를 이야기 드리는 이유는 이00님과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시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한울타리속에서 같이 살면서도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제각기 다른 만다라(曼茶羅)속에서 살아갑니다. 종교행위는 자기 정화를 위한 것인데 함무라비 식의 복수전인 지옥과 천당의 유무(有無)를 따져 얻어지는 이익은 하늘과 땅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처가 웃고 예수가 깔깔거리면 세상 가득히 웃음이 넘칠텐데 부처가 실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가 이에는 이를 가니 세상은 항상 불안합니다. 워싱턴 한국일보가 그 멀고 먼 텍사스까지 배달되어 나의 졸필을 읽으신 것이 신기합니다.
제 못난 글이 Van Gogh가 마지막 남기고 죽은 전 재산인 구두 한 켤레처럼 이00님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나의 스트레스는 한오백년이 되어도 좋습니다. 몽당 빗자루같은 망언다사(妄言多謝) 여기서 점을 찍겠습니다. 자유하실 때까지 내내 건강하시길 두손 모읍니다.

<이동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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