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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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눈물

2023-01-03 (화)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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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미세스윤을 생각하면 눈에 이슬이 맺힌다. 생명의 은인, 미세스 윤은 거의 초죽음에 이른 나를 살려놓고 홀연히 떠나 버렸다.
모든 것이 낯설은 이민초기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뒤쪽에는 개울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정감이 가는 동네였다.
어느 날 나와 어린 아들은 개울가로 산책을 나갔다가 참으로 신기하고 등짝이 육각형이며 가장자리가 노란색인 조그만 거북이를 보았다. 한국에서는 전혀본 적이 없는 마치 동화속에서나 봄직한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 야생 거북이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니 옆집에 사는 금발의 미소년이 야생동물을 그렇게 집안으로 가져 가는게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 하기도 하여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세숫대야에서 헤엄치고 있는 노란 거북이를 들고 나와 개울가로 내려가 제자리에 놓아 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참으로 이상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비몽사몽간에 앉아 있기도 힘들 지경으로 체중이 줄어 들기 시작했다. 설사가 계속 나를 괴롭히면서 원인이 무엇인지 알길이 없었다. 설사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전전긍긍 하면서 곧 멈출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계속되는 설사로 몸무게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고 외출 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그때 삼십대 초반이니 설사로 의사를 찾아 간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고 내 몸이 원상복귀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는 아들 친구의 아버지가 인도인 내과 의사여서 자초지종을 얘기 하였더니 다음날 두툼한 약봉지를 건네 주는게 아닌가! 그러나 이 약들은 아무 효력도 발휘 하지 못하고 몸은 점점 더 말라가고 비참한 몰골이 되었다.
당시 어린 아들을 태권도시키느라 태권도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미세스 윤이라는 한국여인이 역시 어린아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는 그저 눈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체중이 너무나 줄어버린 피골이 상접한 나의 몰골을 보고 미세스 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당장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 집에 도착하니 이제 미국 이민 온지 얼마 안되는 것 같았고 거실 한구석에는 어린아이 키만큼 큰 이민가방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미세스 윤은 자기는 밤일을 하고 남편은 낮에 일을 한다고 하였다.
미세스 윤은 이민가방에 머리를 박고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 그 가방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온갖 잡동사니 살림살이들이 다 나오고 있었다.
제일 밑바닥에서 약봉지를 찾아내고 물컵을 가지고 와서 아무 말도 하지말고 지금 당장 이 흰 약가루를 먹으라고 한다. 약가루는 한국의 미세스 윤 친구가 한의사를 찾아가 미국 이민가는 친구를 위해 특별히 조제를 부탁한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인연으로 내가 그 약의 수혜자가 된 것이었다. 그 다음날 기적처럼 설사가 멈추어 버린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은 야생 거북이한테는 치명적인 살모네라균이 있는데 내가 감염된 것이었다. 설사로 거의 초죽음에 이른 나는 회복이 되어서 일상속으로 분주하게 들어 갔으며 다시 어린아들을 데리고 태권도장에 갔는데 이상하게도 미세스 윤을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두어달이 지나서야 나는 태권도 사범에게 미세스 윤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주소를 좀 가르켜 달라고 애원하였다.

사범은 윤씨 가족은 이사가고 없으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그만 망연자실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에게 아무런 인사도 못하고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저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회한의 눈물이 내 뺨을 흘러 내리고 있었다.
진작에 찾아 보았어야 하는데 배은망덕한 이가 되고 말았구나… 설상가상으로 우리 가족도 얼마후 이사 하게 되어 그녀를 영영 만나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거북이 사건에서 부터 오늘날까지 수십년 동안 나는 한번도 미세스 윤을 잊어 본적이 없다.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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