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 올해따라 왠지 감흥이 우러나지 않는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2022, 국내외 정세 탓일까. 적어도 내게 있어서 연말연시야말로 한 해 동안에 일어난 갖가지 사연들을 정리, 회고해 보고 다가오는 한 해의 소망을 그려 보는 로맨틱한 계절이다. 그러나 왠지 올해 따라 좌절이라 할 만큼 기분이 가라앉기만 하고 있다.
영어로 January(1월)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야누스(Ianus/Janus)에서 왔다고 읽었다.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이다. 흰색을 나타내는 얼굴은 밝음과 미래를 상징한다. 다른 한 편의 검정 얼굴은 절망, 종말과 과거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좀처럼 내 영혼의 시계는 어둠의 시간에만 멈춰 서서 새 빛을 향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진흙탕 개싸움(이전투구)’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고국 땅에는 엄청난 홍수가 각종 산업 시설을 덮쳤고 대형화재, 산불 등 자연재해가 잇따랐다. 마치 우리의 타락, 탐욕, 사치, 끝 모르는 정치인들의 미친듯한 분열, 싸움질에 하늘의 저주가 내린 듯이 그런 참담한 한 해가 아니었던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앞에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하늘을 향해 심장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뉘우침과 일탈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다. 책임자 처벌도 당연한 순서이지만 우리 모두가 신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할 길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이 참사를 계기로 정권을 괴롭혀 보려고 국가 전체를 불화, 분열의 늪에 빠뜨리려는 것만으로는 희생자들의 영혼이 위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존재 자체가 나라 전체를 우울과 불안의 분위기로 만드는데 제일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제1야당 민주당, 도대체 왜 이러는지 수긍할 길이 없다. 황당한 방탄출마로 국회의원을 만들고 당대표로 밀어 올려놓고 그 다음에 산같이 많은 부정부패 혐의들을 모면해 보려 휘둘리며 시달리고 있지 않나. 긴 설명 안 해도 지난 1년 누가 이 나라 정치를 혼란의 수렁 속에 빠뜨려 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야누스의 검은 뒷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도 우리의 1년을 불안 초조하게 만들고 실망시켜 왔다. 정국운영이 너무 서툴고 일방적이고 아마추어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사 스타일이 편파 감정적이고 홍보수단은 정책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국민 설득이나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요령도 너무 서툴다. 부정비리 척결, 구시대 적폐청산 추진이 비조직적이고 과속이다. 새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큰 사건 모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닳고 닳아 빠진 정치꾼들을 한꺼번에 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연말에 단행한 대통령 특별사면도 낙제점이다. 선정을 베풀고도 많은 뒷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차별 사면이었다. 다가 오고 있는 경제 위기에 대비해서 정서적으로라도 주요 경제인들부터 사면을 했어야 옳다. 실정법상 교도소에 더 있어도 괜찮을 정치범들은 대거 풀어주고 경제범들 사면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공영방송을 포함한 언론계 대부분이 윤 정부에 비우호적이다. 끊임없이 윤 정부에 반대 무드를 견지하고 있는 언론들의 비협조로 계속 시달리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사건 해결은 잘 처리했고 국민의 갈채를 모았지만 ‘일몰제 임금보장’ 문제는 노조 측의 요구를 수용해 줘야 한다. 민노총 산하 노조들의 구호에는 ‘주한미군 철수’ ‘한미합동군사훈련 반대’ 등 정치적 구호가 빈번하고 파업에 동조하지 않으면 ‘쇠구슬 쏘기’ 등 폭력까지 등장하는 세태다. 노조가 무슨 파괴 행위를 하든 기업체는 보상을 요구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의 ‘노란 봉투법’ 안은 절대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엊그제는 북한의 ‘핵수저’ 김정은이 ‘무인비행기’를 5대나 서울 등지로 날려 보내 몇 시간이나 배회하다 돌아갔다. 북한도 지금 민심 동요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아무 때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막장 드라마를 각오한 것 같다. 남한 영공이 북한 무인기 침범에 뻥 뚫려 있는 동안 주한미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한미 합동 방어 조직이 허술한 것 같아 불안을 가중시킨다.
‘남북 특사’ 교환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 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야당도 대북 초당적 자세를 보여야만 그간의 우려를 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 해 동안 줄곧 외우내환에 시달리며 무슨 겨를에 연말 감흥으로 들뜰 수 있겠는가. 새해에 대한 기대로 희망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기분 잡쳐버린 한 해다. (571)326-6609
<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