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일본 노래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이테가 늘면서 좋아하는 일본 노랫말이 하나 있다. 인생곡은 더욱 아니지만, 연말이 가까우면 생각나는 노래이다. 제목은 ‘강물의 흐름처럼’이다.
재일동포 출신이며 일본 최고 유명 여자가수였던 미소라 히바리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곡이자 마지막 싱글 앨범이다. 1997년 NHK가 실시한 ‘20세기의 일본을 감동시킨 노래’의 인기투표에서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노랫말 중 일부분이다.
“모르고 모르고 걸어왔네 좁고도 긴 이 길을/뒤돌아보면 저만치 멀리 고향이 눈에 보이네/울퉁불퉁한 길, 굽어진 길, 지도에도 없지만 그것 또한 인생/아~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어느새 세월은 흘러/아~ 흐르는 강물처럼 끝도 없이 그저 하늘이 황혼에 물드는 것일 뿐/산다는 것은 길을 떠나는 것, 끝도 없는 이 길/사랑하는 이와 함께 꿈을 찾으며 비가 내려 질퍽거리는 길이라도/언젠가는 다시 비 개인 날이 올테니까”(이하 생략)
미소라 히바리는 1937년 재일동포(김해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946년 일본 가요계에 데뷔해서 1989년 5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500여곡의 노래를 부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가수였다. 약 40년간 일본 가요계의 여신으로 군림했다. 일본의 이미자이다.
죽기 전까지도 조국을 그리워하고 조국에서 공연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말년에 인생을 돌아보는 듯한 아름다운 가사에 잔잔한 멜로디가 더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굴곡진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부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더욱 여운이 남는 곡이다. 히바리가 영면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후배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부르는 노래다.
노래 가사의 강은 도쿄에 있는 스미다강이 아니다. 작사자인 아키모토 야스시가가 뉴욕에 거주할 때 석양이 지는 초저녁 뉴욕의 이스트강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맨해튼의 오른쪽은 이스트강이고 왼쪽은 허드슨강이다. 여러 명의 한국 가수들이 ‘흐르는 강물’이라고 번안하여 노래를 했지만 히바리의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노래 제목과 가사 번역도 원래 내용과 동떨어져 있고 노래의 여운을 살리지도 못했다.
가사 내용이 황혼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심금을 울려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길을 착잡하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흘러온 강물은 바다에 도달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비가 내려 질퍽거리고 모르고 모르는 길이라도 꿈을 찾아 걸어온 우리 인생길은 결국 바다에 도달하면 사라지고 만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강물처럼 흘러온 인생살이를 또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우라 인생이고 품격 인생임을 되뇌곤 한다.
굴곡 많고 울퉁불퉁한 인생길에서 삶의 곧은결을 따라 결대로 살아가야 편하고 인생이 꼬이지 않고 술술 잘 풀린다. 강물의 흐름처럼 머물지 않고 흘러가듯 그렇게 사는 거다. 억지로 움켜쥐기보다는 비우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말이 되니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시간은 흘러가도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다. 인생의 푸른 강물에서 사랑과 용서로 채운 돛단배를 타고 유유히 흘러가고 싶다. 변해가는 계절에 눈이 녹기를 기다리듯 천천히 흘러가고 싶다.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바다로 흘러가서 소풍을 마치고 싶다. 이 노래의 애절한 멜로디를 들으면서 올 한 해를 조용히 마무리하고 더 건강한 한 해를 기대한다.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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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