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든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시대에 사회 각계각층에서 등장한 출중한 인물들이 뜻을 모아 세계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만들었다. 그 주인공들을 우리는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부른다.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공식적인 리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보는 관점에 따라 포함되는 인물들의 구성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독립선언문과 헌법에 서명했던 분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문서들에 반대를 표명했던 분들도 포함된다. 애국적이고 그 역할에 공헌이 인정되어 그 명단의 상당히 높은 자리에 올라있는 분들도 여럿이다.
미국의 건국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조할 점이 상당히 많다. 가령 이런 거다. 미국은 13개의 식민지들이 그 기반인데,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합중국 헌법이 제정되어 단일한 연방체제를 만들어낼 때까지는 각각의 통치체제를 갖고 있던 독립적인 국가들이었다. 오늘날 남미의 여러 나라들처럼 서로 다른 국가로 고착화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반도는 해방 후 하나의 민족국가가 둘로 나뉘어 분단국가로 살고 있는데 그들은 13개를 하나로 통합했다. 그들은 해냈지만 우리는 실패했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점들을 반추하며 미합중국 건국사를 공부한다면 대한민국의 발전과 통일을 위해서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뜻을 세우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독립선언문 작성이었다. 선언문은 토마스 제퍼슨을 포함한 다섯 명의 초안작성위원회가 작성했지만 그 최종본은 아메리카 식민지 50여 대표들이 격렬한 토의를 거쳐 완성되었다. 미국의 독립과 건국의 과정은 순탄하고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논쟁과 갈등과 위기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문서와 토론으로 만들어진 나라는 미합중국뿐이다. 독립선언문 이전에도 건국의 아버지들은 여러 문서를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모으고 표명한 바 있었지만 그중에도 하이라이트는 독립선언문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여기서 표명한 대의를 구현하고자 식민지 아메리카 인들은 생명과 재산과 명예를 걸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수많은 역사 문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미국의 영혼이 담겨있는 문서이다. 그래서 지금도 워싱턴 국립문서박물관의 가장 높은 곳에서 소중하게 보관, 전시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도 미국독립선언문의 한글번역이 게시되어있다. 헌데 이것이 오역으로 얼룩져있을 뿐 아니라 본문의 거의 절반이 생략되어있다. 생선도 아닌데 토막을 쳐서 날려 먹은 것이다. 재외공관의 기본업무는 국위선양이다. 그런데 한국에 나간 미합중국 대사관은 자국의 영혼을 훼손하고 그것을 수십 년간 방치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독립선언문이 한국에서 겪고 있는 처우이다.
나는 수년의 연구 끝에 올해 책을 한권 냈다. 제목은 ‘이것이 미국독립선언문이다’. 난해한 것으로 유명한 독립선언문을 해독과 낭독이 가능한 현대한국어로 번역한 후 원본 텍스트의 모든 문장에 해설을 달았다. 주경야독의 고된 세월이었으나 보람이 있었다. 나 스스로 미국시민권자로서 미합중국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독립선언문을 올바로 공유할 때 미국에 돌아올 수 있는 이익은 한량없이 크다. 그 이익을 주한미국대사관은 수십년째 발로 걷어차고 있다. 내 것을 갖다 쓰라고 책까지 만들어 보냈는데 꿩 궈먹은 소식이다. 아무리 공무원들이라도 너무 한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드리는데 복지부동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국을 욕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미국의 혼 아니냐. 독립선언문을 훼손하는 주한미국대사관. 이걸 보면 건국의 아버지들이 뭐라고 하실까?
한국인들이 미국을 이해하고 성원할 수 있도록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천부인권과 자유민주주의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온전한 미국 독립선언문 한글버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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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토마스 제퍼슨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