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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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경을 낀 두 남자

2022-12-28 (수)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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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바인에서 치과의사로 명성을 얻은 신 박사는 라스베가스로 아내와 함께 휴가를 갔다.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는 동안 쉼 없이 달려오다가 개업의가 되어 경제적 안정을 얻자 모처럼 휴가를 즐기게 된 것이었다.

갬블을 잘하지 못했던 그가 생각지도 못하게 1만달러라는 큰돈을 땄다. 신이 나서 그 돈을 아내에게 주면서 원하는 명품가방도 사고, 맛있는거 먹고, 샤핑을 하라고 했다. 아내는 공짜 돈이 생겼다며 너무나 좋아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진료에 전념해야하는데 자꾸만 라스베가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몇주 후, 닥터 신은 아내에게 라스베가스에 한번 더 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내는 옆에서 구경을 하고 닥터 신은 지난번 땄을 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카드를 읽었다. 5,000달러면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잃었다. 카드로 5,000달러를 더 만들었다. 그 돈마저 잃었다. 밤을 지새웠다. 월요일은 환자들 예약이 밀려있어 아쉽지만 돌아와야 했다. 지난번에 딴 돈 돌려주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병원 일을 했지만 라스베가스 테이블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번에 가면 꼭 다시 딸 것만 같았다. 아내에게 한번 더 갔다 오고 싶다고 했다. 밑천이 넉넉해야할 것 같아 2만달러를 준비하고 혼자서 갔다. 다 잃었다. 화가 났지만 환자들 때문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일단 돌아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고는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갬블을 잘할 수 있는지 책도 사서 읽었다. 단단히 결심하고 5만 달러를 준비해서 다시 도전했다. 또 잃었다. 카지노 측에서 5만달러를 빌렸다. 이 돈마저 다 잃었다. 한잠도 못자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병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도전해서 반드시 성공하고 말리라 굳게 다짐하고 그동안 벌었던 전 재산을 들고 라스베가스로 갔다. 그 정도 밑천이면 넉넉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모자랐다. 카지노에서 또 큰돈을 빌렸다. 모두 잃었다.

이젠 병원을 팔아도 카지노의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볼 면목도 없었다.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환자들의 예약을 멀리 연기하도록 했다. 의사가 돌아오지 않은 병원은 적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을 팔아도 카지노 빚을 갚을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병원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행기 안에서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트럼프’가 한 말이 생각 난 것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단 한가지 길이 있다면 그것은 카지노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인 경북 울진 바닷가 시골마을에 간판을 걸고 병원을 개업했다. 읍 단위의 시골이라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 네 식구 밥 굶지 않을 정도였다. 2년쯤 바닷가에서 인생의 슬픈 추억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병원으로 검은 안경을 낀 두명의 흑인남자가 찾아왔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사람을 보냈던 것이다. 닥터 신은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보시다시피 조그만 어촌이라 수입이 얼마 안 되니 매달 얼마씩이라도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면서 겁을 주고 갔다. 라스베가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을지 모르겠다. 어찌 닥터 신뿐이겠는가? 도박은 무서운 병이다.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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