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상징이 당나귀인 것이야 다들 아시는 얘기다. 그 당의 시조 앤드류 잭슨을 나귀 탄 촌뜨기로 풍자한 데에서 비롯됐고, 당나귀 동키(donkey) 대신 수탕나귀를 부르던 표현 잭애스(jackass)를 두고 말장난 한 것까지는 미국 역사와 정치 좀 안다는 사람들의 알쓸신잡 정도라 하겠다.
그러니 몰라도 되는 거지만 나는 알아야겠다. 당나귀 정(鄭)씨니까. 이제는 한자 세대에나 해당되겠지만 어려서는 당나귀 정가 소리 많이도 들었다.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냥 넘어갔다. 주먹질 이어질 정도의 조롱은 아니니까. 고무래 정(丁)보다는 낫지 그러면서. 고무래가 뭔지는 알아서 찾아보시고.
양반입네 자랑만 하고 손님접대는 시원찮은 정씨성 주인에게 귀락당(貴樂堂)이라는 당호를 지어줘 엿을 먹였다는 김삿갓 방랑기를 기억하시면 노인네 인증이다.
여기 미국 당나귀의 족보에는 조지 워싱턴이 등장한다. 내가 사는 동네 마운트 버넌이 미국 당나귀의 본산이다.
군인,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긴 워싱턴의 본업은 농장주다. 지대 뽑아먹는 한량한 부재지주가 아니고 농장 일에 전념을 한, 요즘 기준으로 보면 열정적인 기업가라고 보겠다. 농사를 짓는데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가 큰 술로 빚어 돈을 벌었다. 독립해서 정부라는 게 생긴 뒤 술에 세금을 거두자 농민들의 반발이 터졌고 이 위스키 반란을 군대로 진압하면서 나라의 존재를 뚜렷하게 보여준 이가 워싱턴이었으니 술에 관한 한 그의 입장은 노예제에 대한 그것처럼 설명이 간단치가 않다.
그가 당나귀에 관심을 둔 것도 생산성을 겨냥한 사업가적 발상이다. 말 잘 듣고 사료는 적게 먹는데 힘이 좋은 노새(mule)에 꽂힌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다.
생물학 시간에 배웠다시피 아빠 당나귀(jack)가 있어야 암말(mare) 엄마한테서 노새가 나오고 노새 사이에서는 새끼를 낳을 수가 없으니 노새의 지속적 생산에는 당나귀가 계속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 당나귀를 쳐줬다. 그런데 수입이 여의치 않았다. 국외반출에 국왕의 허가가 나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의 시도가 무산됐다.
마침내 스페인 당나귀를 들여올 수 있었던 것은 독립전쟁을 마치고 미국이 신생국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고서다. 물고물리는 국제 역학관계에서 일종의 외교 제스쳐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가 워싱턴에게 나귀를 선물로 보냈다.
스페인에서도 최고로 치는 포르투갈 접경의 사모라산 당나귀 두 마리가 대서양을 건너는 뱃길에 올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따로따로 다른 배에 실었고 결국 한 마리가 살아 1785년 가을 미국땅을 밟았다. 배가 닿은 매사추세츠에서 여기 버지니아까지 육로로 오는 동안 그 행적이 전국적 관심을 모은 뉴스였다.
우리의 당나귀는 왕실의 선물, ‘로열 기프트(Royal Gift)’로 이름을 받았다. 관운장의 적토마, 로버트 리 장군의 트레블러처럼 역사에 남는 이름이다.
이듬해 짝짓기 철부터 로열 기프트는 본연의 임무에 들어갔다. 첫해는 관리자들의 경험 부족으로 시원찮았으나 이듬해부터는 쑥쑥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근 농장들에서도 씨를 받고자 나섰다. 줄을 서시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일대의 신문에 그의 이름을 앞세운 종마 서비스 광고가 실렸다. 그렇게 우리 종친의 자손이 퍼졌다.
아메리카 땅에 당나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덩치 크고 힘 좋은 노새들이 등장한 것은 로열 기프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1789년 대통령이 되어 당시의 수도 뉴욕에 부임하면서도 로열 기프트에 대한 워싱턴의 관심과 자부심은 각별했다고 한다. 워싱턴은 국토 순회를 통해 신생국 연방정부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자 했는데 농장 많은 남쪽에 가서는 지주들의 호감을 사고자 로열 기프트를 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남쪽 농장들에서는 암말(mare)들을 준비하느라 잔치 분위기였지만 긴 여정과 무리한 행사일정에 지친 우리의 아이돌은 급기야 탈이 났다. 결국 1796년 4월 향년 14세 우리 종친 로열 기프트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우리 종친 소개는 이 정도 하고, 노새와 달리 수말(stallion)과 암탕나귀(jenny) 사이에서 둘의 안 좋은 점만 받고 태어나 말 안 듣고 일 못하는 버새는 영어로 히니(hinny)라고 부른다.
노새는 좋은 거고 버새는 나쁜 것?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그러는 건가. 버세 버세 젊어서 버세, 그것도 맞는 말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