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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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소리

2022-12-27 (화)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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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라도 오시려나… 창밖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져 하늘을 향해 뻗은 앙상한 나무가지의 손들도 물들고 있다. 어둡고 음산해 보인다. 며칠 안 남은 이 해의 달력은 외롭게 벽에 붙어서 쓸쓸함과 서글픔을 더해 준다.
해마다 찾아오는 12월이지만 노년에 맞는 연말은 외로움이 서린다. 조금씩 짙어오는 어둠속에서 살며시 구름을 걷어올린 서쪽하늘 주홍빛 석양의 화려한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도 그 속을 스치는 허무한 바람이 가슴 한켠에 숨겨졌던 감성코드를 흔들며 어느새 나는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를 흥얼거리고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른다. 세상이 아무리 헛되고 야속해도 무엇를 탓하고 원망할 수는 없겠고, 그래서 해결될 일도 아니니 눈이라도 내려 온 천하가 하얗게 덮혀지면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도 밝아지지 않을까 싶은 날이다.
제과점에 가서 달달한 단팥빵과 고구마케잌을 주문하고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음악과 함께 추억에 잠긴다. 지나가서 잊힌 것들이 어느새 돌아와 현재의 빈 자리를 메꾸고 있다.

커피꽃의 꽃말인 “언제나 당신과 함께” 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의 향과 나의 추억은 그 때 못 느꼈던 것, 알아 보지 못한 것까지 새록새록 되살려 내고 있다. 대학생시절에 우리 만남의 방, 데이트 공간, 음악 감상의 일부였던 다방에서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트리오 등 유행하던 가수의 팝송과 외국가요를 들으며 족보에도 없는 계란 노른자를 타서 모닝 커피라고 마시던 시절을 생각하며 웃음도 지어본다.
서툴렀던 젊은 시절에 지친 삶을 추스리고 다독거리던 시절도 그려진다. 살다보면 서러운 일이 가슴에 쌓이기도 하지만 겨울의 찬 바람은 인생에서 영혼을 뜨겁게 하고 삶의 의지를 샘솟게 하며 자신을 일깨워 주었다. 바람은 세상을 스치는 소리가 된다. 사람도 나무처럼 생의 낙엽을 털어내는 걸까. 철이 들면서 맞은 가을엔 고독이 동행했다. 그리고 그 길위에는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체험함으로 보다 나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가까이 보면 인생은 온통 혼란스럽고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서 보면 모두가 감사한 것 뿐이다. 이만큼 건강하게 사는 것, 가족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반겨주는 친구가 있고 힘들 때 찾을 수있는 교회가 있고 함께 할 믿음의 식구가 있다는 것 등 모든 것에 감사한다. 비록 인생의 노년이 다가오지만 그 모습은 화사하면서도 낙엽되어 밑거름으로 되는 단풍처럼 우리도 우아하게 나이들어 후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면 한다.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는 이웃을 사랑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적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주신 사랑을 실천함에 있다. 잠 못드는 밤에 장엄한 하늘을 쳐다보면 별들은 속삭이며 반짝이고 은하수가 펼쳐지면서 온 세상은 푸른 빛속에 잠들게 된다.
조건없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받은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주어서 아주 미미하게라도 그걸 느끼게 된다면 분명 우리 삶에도 푸른 빛이 감돌지 않을까. 사랑과 나눔의 계절인 연말이라 더욱 피부에 다가온다.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노인들의 공통점이 밝혀졌다. 같은 노년기를 살면서 더 활기있게 산다는 것은 분명 하늘이 주신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공통점을 보면,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이고, 욕심없고 여유있게, 경제적으로 독립되고,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갖고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배우며,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고, 종교를 갖는 것이다. 마음에 평화를 갖고 생명력과 기력을 회복하고 면역력을 높이면 분명 우리는 활기있고 젊게 살게 되지 않을까.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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