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손녀의 작은 반란

2022-12-12 (월) 양주옥(피아니스트)
작게 크게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해마다 음악회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 수도 늘고 제법 성대하게 치르곤 했다. 갓 시작한 어린 아이들부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까지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했다. 그런데 음악회를 준비하는 도중에 코로나로 인해 중단하게 되었고 지난 3년 동안 접어 두었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성장했고 연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많지 않은 학생이지만 그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올해는 성탄절에 작은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형편상 내가 직접 가르쳤고, 학생들 음악회를 하면서 아이들도 같이 하게 했다. 물론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아들은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인 것이 너무 싫다고 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여러 모양으로 음악회를 도왔다.

올해는 특별히 다섯 살 된 손녀 딸이 연주로 함께 하게 된다. 일 주일에 두 번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봐 주는 동안 짬짬이 가르친 피아노를 엄마와 함께 연주하게 했다. 딸은 배우면서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딸과 연주할 수도 있으니 나름 배운 덕은 보는 셈이다. 평소 바쁜 일상과 아이들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어 지난 주말에 연습을 하기 위해 잠깐 집에 왔다. 피아노에 앉으며 하는 첫마디. “엄마 손녀 딸 말을 너무 안 들어. 엄마가 알아서 해 봐. 내가 틀렸다고 하면 자기도 안다면서 말하지 말래.” 요즘 아이들은 눈치가 너무 빠르다. 학교 선생님인 엄마가 학교에선 선생님인 줄 알고 말을 잘 듣는데, 피아노는 할머니가 선생님이니 엄마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구나 연주회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 그냥 엄마랑 뚱땅거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는 마음이 급하다. 다행인 건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하면서도 피아노를 배울 때는 떼 부리지 않고 잘 듣고 따라한다는 점이다.

연주회가 다가오자 다른 학생과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배운 기억을 떠올려 자녀들과 함께 해 보겠다고 말은 했는데 자녀양육과 집안일로 연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모녀가 함께 앉아 연주하는 모습은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잘하는 것보다 함께 했던 시간들을 평생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멋모르고 배우지만 조금 더 커서 언제 반란을 일으키며 그만두겠다고 할지 모른다. 나는 그날이 오기 전에 그들의 삶에 풍성함을 더해 주는 소중한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양주옥(피아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