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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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2022-12-05 (월)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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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교내에 잘 꾸며진 테니스장이 있어서 강의가 끝나기만 하면 아무런 부담 없이 공을 치면서 즐겁게 지내곤 했다. 주말에는 아파트 단지에 마련된 코트에서 동호인들과 공을 쳤으니 일주일 내내 테니스를 치며 살았던 셈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YWCA의 ‘여울’이라는 여성 등산 클럽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 등산하면 서 취미 생활과 건강 관리를 해 왔다.

정년을 10년 앞둔 어느 날, 노후생활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이제부터는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에 의논한 끝에 아내는 다른 취미생활로 소홀했던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는 아예 테니스 코트에서 살다시피 했다. 출근 시간이 되면 나는 학교로 향했고 아내는 테니스 코트로 나가서 레슨을 받으며 내가 퇴근할 때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나는 테니스를 계속해 가면서 실내 탁구장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가끔 아내를 따라 등산하거나 골프장으로 가서 라운딩하며 두 사람이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취미생활과 건강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운동 중에서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라는 생각에서 테니스를 선택하게 되었고, 십여 년간 좋아하며 즐기던 골프는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라는 단서를 붙여서 일단 뒤로 미루어 놓았다.


계획했던 대로 정년퇴직 후에 새 직장을 따라 버지니아 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고, 우리 내외는 낯설고 새로운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며 ‘인생 2모작’을 시작할 즈음 우연한 기회에 동네 코트에서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테니스 클럽을 만들자는 의견을 모아 ‘센터빌 테니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주말 아침 7시경이면 어김없이 휴대전화기에서 숨 가쁘게 들려 오는 ‘출발’ 소리를 들으면서 바삐 코트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다시 이어지는 너도나도 코트로 출발한다는 회원들의 문자가 뒤를 잇고 있어서 클럽 회원들의 주말 아침은 평일보다 더 바쁘고 급하기만 하다.

이처럼 바쁜 주말 모임은 여름에는 대체로 오전 05:30분 경부터 시작되지만, 겨울에는 보통 7시부터 코트가 북적대 기 시작 한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급한 마음에 테니스 가방을 메고 코트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치면서 입으로는 아침 인사를 하면서 눈은 코트에 꽂혀 있다. 코트에는 이미 불꽃 튀는 게임이 시작되어 가끔 공을 놓친 회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안타까운 소리까지 따뜻한 모닝커피 향 속에 넣어 음미하면서 다음 게임을 준비 하는 우리 테니스 클럽의 주말 아침 풍경이다.

동네 클럽이어서 회원 수는 적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활발하고 정겹게 움직여진다. 먼저 나온 순서대로 두 코트에서 게임이 시작되면 다음 게임을 기다리는 회원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과일 등을 먹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기 도 하고 지난 일주일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회원 간에 우정을 다지기도 하는 정겨운 풍경도 우리 클럽 의 자랑거리다.

우리 클럽의 큰 자랑은 회원들 간에 두터운 정으로 뭉친 화목한 클럽이라는 데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당연히 시빗거 리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을 법 한데도 클럽이 창립된 이후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회원 간에 볼썽사나운 일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클럽 회원들의 높은 인격 수준을 말해 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특히 매월 두 번째 일요일 새벽부터 열리는 월례회 날에는 전 회원이 모여 코트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 동안 닦아온 기량을 펼쳐 보이는 기회도 있다. 우리 내외는 실력이 달려서 아직 한 번도 우승 해 본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로 위로를 삼고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으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월례회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 지역 어느 교회에서 실시하는 테니스 대회에 출전한 우리 회원들이 우승과 3등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 이 지역에 우리 클럽의 이름을 알리는 경사도 있었다. 이렇게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 여러 회원과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에 힘을 쓰고 있는데 이는 회원 모두 삶의 질을 높이고 백세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건강관리를 위해 신선한 새벽 공기를 마셔가며 그린브라이어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코트에서 센터빌 테니스 클럽 회원들과 운동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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