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눈이 녹은 진창 위에 남긴 발톱 자국’이라는 뜻의 이 말은 얼마 안 가서 진창 위의 자국이 지워져 흔적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러하니, 결국 인생이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고사성어나 사자성어 중에는 인생무상에 관한 말이 많은데,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찾아보려 하고 그러다 보면 후회, 반성, 아쉬움, 허무함 등을 느끼게 됨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람이 인생에 대하여 느끼는 감회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설니홍조라는 이 고사성어는 11세기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이 그의 아우 자유(子由)에게 보낸 유명한 시 <화자유민지회구 (和,子由,澠池,懷舊, 민지에 있는 동생 자유에게 답하며 옛일을 회상함)> 중에서 ‘인생길 이르는 곳 무엇과 같은가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날아가던 기러기가 눈 녹은 진창을 밟은 것과 같다네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진창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지만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기러기 날아가면 동쪽으로 갔는지 서쪽으로 갔는지 알 수 없구나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라는 구절 중에 나오는 말이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시이지만 읽고 나면 어쩐지 옷매무새를 한번 고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이다.
이밖에 인생무상을 표현한 다른 말로는, ‘인생이란 뜬구름과 아침 이슬 같다’는 부운조로(浮雲朝露), ‘봄날에 꾼 한바탕의 덧없는 꿈 같다’는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 짓는 순간처럼 덧없다’는 영고일취(榮枯一炊), ‘세상은 여관과 같아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는 역려과객(逆旅過客) 등이 있다.
이와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고사성어는 별로 없는데, 굳이 하나를 들자면 ‘옛것을 돌아봄으로써 새로운 것을 안다’는 논어(論語)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과거로 부터 새로운 것을 깨달아 보다 슬기로운 미래의 삶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아사침궐종자 (農夫餓死枕厥種子), 즉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리석고 인색한 사람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재물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앞날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내일 세상이 끝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의 말과 상통한다.
이러한 말들은 열정적으로 살았던 전성기 이후의 인생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미래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구하려는 의지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원의(原意)라고 생각된다. ‘기러기가 진창을 디뎠던 발톱 자국’만 내려다 보지 말고 진창을 디디고 높은 하늘로 다시 도약하여 동쪽이든 서쪽이든 힘차게 날아가는 기러기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설니홍조의 보다 긍정적인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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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