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시어머니 설움

2022-11-28 (월)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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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대학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을 하고 싶어서였다. 아들 둘을 둔 친구인데 맏아들을 장가 보내면서 부모 마음을 많이 나누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 맏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들이 고집을 부려 탐탁치 않은 결혼을 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혼 후에는 그래도 잘 지내보려고 몇 차례 자리를 마련하려 했으나 코로나를 이유로 무산되었다. 코로나 3년동안 한번도 아들 집에 가 본적이 없는데다 얼마전 이사를 했다는 소식만 작은 아들을 통해서 들었을 뿐 언제 했는지 어디로 했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추수감사절이 되어 아들 며느리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하다며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금지옥엽 정성을 다해 자식을 키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유학 온 남편 뒷바라지에 두 아들을 혼자 키우느라 젊어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엄마로서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바르게 잘 키워서 제 몫을 다하는 훌륭한 성인이 되고 예쁜 며느리 맞아 오손도손 사랑하며 사는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같은 마음이다. 아들을 키우며 며느리에 대한 꿈이 있고, 딸을 키우며 사위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다. 내 딸이 다른 집으로 출가하여 가정이 더 화목해지고 시어른들께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며느리가 우리 집안에 오면서 화목해지고 진짜 한 가족이 되는 것을 바란다.

그런데 현대는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에게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우리가 결혼했을 당시에는 시어머니의 동의하기 어려운 말씀도 감히 거역하지 못했고, 시댁의 가풍을 배워가며 한 가족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엔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해도 안되고, 말을 한다 해도 며느리들은 가만히 듣고 있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살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진 시대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아들 딸이 있어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이해하려 애쓰는 편이지만 친구는 아들만 둘이니 아무리 잊어버리자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도 많고 살가운 친구가 아들도 잃고 며느리도 잃은 것 같은 허전한 마음에 외롭게 감사절을 챙기는 심정이 헤아려져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요 부모 사랑은 노력해야 되는 사랑이라지만, 시어머니의 설움은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자식이 조금이라도 알까. 친구를 보며 며느리들이 어떤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시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사랑받는 시어머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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