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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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다녀오면서

2022-11-16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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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다녀왔다. 3년만이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좀 편하게 다녀왔다. 예전 가을의 고국 방문길은 거의 모두 미국인 교육자들과 함께 했는데 이 번에는 나 혼자였다. 미국인들을 위해 길 안내, 통역을 할 필요나 음식을 고르는데 조심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도 여유있게 다녀오기로 했다.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3주라는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일 중독자인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아무 일 없이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국방문 중 강연할 곳을 물색했고, 6개의 강연을 미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주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몰아서 했다. 그것도 모두 다른 지역에서 말이다. 공주에서 시작해 대구, 창원, 진주, 여수를 거쳐 서울에 돌아와 마무리했다. 부담되는 스케줄이었지만 다행히 한 강연도 취소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고국 방문 중 마음이 가장 아팠던 것은 역시 이태원 참사였다. 핼로윈 파티로 모인 인파로 인해 무려 150여 명이 압사를 당한 끔찍한 일이었다. 현장은 사건 바로 전날 내가 가보기도 한 곳이었다. 이태원에서 옷 한 벌을 구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내려준 곳이 해밀톤 호텔이었고 거기서부터 옷 가게까지 걸어가는 길에 그 골목을 보았었다. 경사진 좁은 골목에 몰려든 인파가 양쪽 방향으로 서로를 밀면서 압사를 초래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에서 말이다.


참사 당일 오후에 나는 전날 강연했던 학교의 책임자와 인사동에서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담소 후 내가 다음 약속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다고 하자 그 책임자가 인근의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소개했다. 익선동 한옥거리였다. 과거에 사람이 거주했던 한옥들이 다양한 식당과 상점으로 변해있었다. 많은 식당들에 손님들이 차고 넘치는 활기찬 모습을 보았다. 좁은 길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안내를 받으면서 찾아온 생각은 혹시라도 화재가 나면 큰일이겠다는 것이었다.

골목길들이 소방차가 들어올 만큼 넓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들과 상점들은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건축 자재도 인화성이 높아보였다. 만일 인파로 붐빌 때 화재가 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안내하는 사람에게 미국이라면 이런 곳에 건축이나 영업허가가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안내자는 내 말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각 식당과 상점에 소화기가 비치되어있고 화재에 대비해 훈련이 잘 되어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안내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내가 추가로 내 생각을 전했다. 아마 국가적 차원에서 정돈이 필요할 것 같다고. 국가에서 식당, 상점 그리고 집 주인들에게 보상을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이태원 참사 자리를 다시 찾았다. 이태원에 갈 일도 있었지만 참사의 현장과 사람들의 추모 모습을 찾아보고 싶었다.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많은 꽃들과 메시지들은 나를 다시 한 번 숙연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나를 화나게 한 게 있었다. 추모 장소 정중앙에 엄청나게 큰 사이즈로 자리잡고 있는 고국의 두 정당이 내건 플래카드였다. 당연히 정당들도 추모에 참여해야겠지만 과연 그러한 사이즈로 그 곳에 플래카드를 칠 권리가 있는지, 아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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