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61)

2022-11-01 (화) 기자
크게 작게

▶ 고달픈 신입 우체부

채용과정을 모두 거친 후 우체국에 배치되어 우체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채용과정에서도 얘기 들었지만 우체부는 비정규직(non career)으로 시작하고 프로베이션(probation 시용)도 적용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우체부에 대한 표현은 몇 번 바뀌어서 지금은 CCA(City Carrier Assistant)가 되었다.

우체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체부가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체국 일은 배달하는 우편량이 매일매일 다르고 또 매일매일 우체부의 인력도 다르다. 가장 큰 요인은 그날 배달할 우체부의 숫자이다. 모든 우체부가 또박또박 100% 출근해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쉽게 돌아가겠는가. 휴가를 간 인원도 있고, 본인이 아프기도 하고, 가족이 아프기도 하고, 출근하다 자동차가 서 버리기도 하고, 낯선 자동차가 내 차를 들이받기도 하고. 하지만 그날 우체국에 도착한 우편물은 그날 안으로 배달되어야 하기에 늘 예비인력이 필요하다. 그 예비인력을 신입 우체부가 담당하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당 40시간의 근로시간 보장 여부이다. 정규직은 주당 40시간의 근로시간이 보장되지만 비정규직은 보장되지 않았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주당 20시간 이상만 보장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에서 운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떤 신입 우체부는 배달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을 훨씬 넘겨 6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신입 우체부는 배달 인력에 크게 쪼달리지 않는 곳에 배치되는 바람에 주당 20시간 정도만 일하게 되어 도저히 생활비 충당을 할 수 없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사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우체부가 되었어도 우체부로 남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근무환경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밖에서 볼 때에는 우체부가 하는 일이 쉬워 보였는데 막상 우체국 안에서 해보니 이게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 그래서 우체국에서도 신입 우체부에게 유니폼으로는 모자만 지급한다. 그러니 우체부 가방을 메고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유니폼이라고는 딸랑 모자 하나만 있다면 신입 우체부라고 봐도 된다.
누구나 다 신입(beginner) 시절이 있고 그 신입 시절은 견디기 힘들다. 신입 우체부가 힘든 이유 두 개.


신입 우체부가 같은 우체국 같은 배달구역에서 매일 배달하는 것은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거의 매일 다른 배달구역에서 우편물을 배달한다. 때로 다른 우체국에서 인력 부족이 발생하면 다른 우체국으로 파견되어 우편물을 배달하기도 한다. 다른 우체국이니까 낯선 곳? 우체부에게는 낯선 곳이 없다. 처음 가는 동네라고 뭐 봐주는 것 없다고 보면 된다. 그저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해야만 한다.

신입 우체부는 기존 우체부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주로 맡게 된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소포를 배달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돌아다니는 우체국 차량은, 일부 기존 우체부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신입 우체부가 운전하는 것이다.
그 힘든 시절의 실화 세 개.

맨 처음 배치된 우체국에서 만나 수퍼바이저는 최악이었다. 출세욕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는데 윗사람에게는 바짝 엎드리고 우체부에게는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기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후로 여기저기에서 수퍼바이저와 매니저를 많이 만나봤는데 좀 힘든 수퍼바이저를 만나도 ‘그래도 그 사람보다는 낫잖아?’하면서 견디어 냈다. 그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었다.

어느 날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몇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 얘기들 하고 있어?”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C우체국 신입 우체부 얘기.” “못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거기 신입 우체부가 근무 시간 중에 사무실로 전화해서는 ‘젠장,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나 때려치운다. 자동차는 어디에 있으니까 거기 가서 가져가.’라고 했다는군.” 얼마나 화가 났으면 자동차를 우체국에 반환하는 것조차 거부했을까…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우체부의 초기 생활은 고달프다
.
또 한 사람은 바로 옆 우체국의 신입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해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니 왜? 말없이 배달 잘하던 것 같던데?” “그 친구, 시간 안에 배달을 다 못하니까 마치는 시간이 되면 일단 우체국으로 돌아와서 타임 아웃한 후 자기 차량으로 우편물 배달을 계속했다는군.” 아… 시간에 얼마 쫓겼으면 그렇게까지…. 하지만 그 배달구역에서는 우체부 유니폼도 제대로 차려입지 않은 사람이 밤늦은 시각에 우체국 차량도 아닌 일반 차량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을 보고 수상쩍다고 생각해서 우체국으로 전화를 하는 바람에 발각이 된 것이다.
지금 당신이 보는 ‘유니폼을 다 갖춘 우체부’는 그 힘든 과정을 모두 거친 역전의 용사들이다. 혹시 마주치면 반가운 인사라도 건네주시길 바란다.

<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