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시즌, 미 동부의 스키어들이 분주해졌다. 뉴욕과 뉴저지 한인들의 ‘안방’이라 불리는 헌터 마운틴(Hunter Mountain)부터 펜실베이니아의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 그리고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한인들이 즐겨 찾는 스노슈(Snowshoe)까지, 은빛 설원은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스키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낭만만이 아니다. 때로는 무지에서, 때로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이른바 ‘스키장 빌런(Villain)’들이 즐거운 휴일의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저지를 수 있는 슬로프 위의 결례들은 무엇일까. 스키어라면 한 번쯤 돌아볼 만한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를 짚어보고자 한다.
가장 흔하면서도 위험한 유형은 이른바 ‘슬로프 중앙 점거형’이다. 이들은 하필이면 슬로프 한가운데, 그것도 언덕 바로 아래 시야가 가려지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일행을 기다린다.
헌터 마운틴처럼 인파가 몰리는 스키장에서 이런 행동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스키어에게는 예고 없이 나타난 장애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멈춰야 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슬로프의 가장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스키어라면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음으로 리프트 라인에서 흔히 마주치는 유형은 ‘리프트 줄 무단 합류형’이다. 미국 스키장의 리프트 대기 줄은 비교적 질서 정연한 편이지만, 간혹 일행을 찾는다는 핑계로 슬금슬금 앞으로 끼어드는 이들이 있다. 특히 앞사람의 스키나 보드를 툭툭 치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행동은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십상이다. 따라서’리프트 대기 에티켓’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비를 둘러싼 ‘공간 무시형’ 비매너도 빼놓을 수 없다. 포코노 산맥 일대 스키장의 휴게소 입구나 통로에 고가의 장비를 아무렇게나 늘어놓아 통행을 방해하거나, 스키 팁으로 타인의 장비를 긁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스키장에는 장비를 거치할 수 있는 랙(Rack)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내 장비가 소중하다면, 남의 장비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무신경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다.
가장 위험한 유형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무법 질주형’이다. 빙질이 단단해지기 쉬운 미 동부 스키장의 특성상, 초급자 코스에서 상급자처럼 속도를 내며 내려오는 행동은 흉기와 다름없다.
스키장 사고의 상당수는 뒤에서 오는 스키어가 앞사람을 추돌하면서 발생한다. 슬로프에서는 언제나 앞서가는 사람이 우선이며, 추월할 때는 충분한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 철칙이다. 빠름은 실력이 아니라 위험을 키울 뿐이다.
스키는 기술의 스포츠이기 이전에 매너의 스포츠다. 화려한 카빙보다 더 빛나는 것은 넘어져 있는 초보자에게 건네는 “Are you okay?”라는 한마디다. 이번 겨울 시즌, 우리가 챙겨야 할 최고의 장비는 비싼 스키 판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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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의/미동부한인스키협회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