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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의 후진 막아줄 ‘고임목’

2022-11-01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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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최초로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893년 9월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영국 식민지 뉴질랜드에서였다. 미국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이로부터 27년이나 지난 1920년이었다.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나서도 아주 오랜 기간 여성들이 정치참여에서 배제된 것은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지고 여성의 본분은 정치 참여가 아닌 가정을 지키는 데 있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여성들의 참정권이 법률적으로 보장된 이후에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여성의 정치 참여 혹은 정치적 성향과 관련해 몇 가지 통념들이 존재한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정치에 무관심하며 성향은 남성들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선거후 실시되는 투표행태 조사를 통해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임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라 할 수 있는 한국의 20대 대선을 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나머지 연령층에서는 여성들의 투표율이 남성들보다 높았다. 또 이 연령층에서는 윤석열보다 이재명에게 표를 던진 여성들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 매년 실시되는 유권자 이념조사 결과도 기존 통념에 일격을 가한다. 북한과의 관계와 국가보안법 등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해서 때로 인권이 무시될 수 있는가”라든지 혹은 “대중교통 파업을 엄단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에서는 여성들의 반대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들의 인권감수성이 남성들보다 더 높고 사회적 약자들의 결사권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더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남성들 못지않게 활발하며 그들의 성향은 남성들보다 더 진보적이다.

미국의 경우 이런 경향은 한국보다 더 뚜렷하다. UCLA 고등교육 연구소가 2016년 184개 대학의 풀타임 대학생 13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남녀 간의 정치적 성향 격차가 최대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응답자들의 41.1%가 자신을 진보 혹은 좌파라고 밝힌 반면 같은 응답을 한 남성은 28.9%에 불과했다. 연구소는 지난 1966년부터 같은 조사를 실시해오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조사에서 남성들의 진보성향이 훨씬 강했지만 80년 대 중반 비슷한 비율을 나타낸 이후 남녀 간의 정치성향은 완전히 역전돼 버렸다.

이런 남녀 간 성향 차이는 그대로 투표로도 이어지고 있다. 퓨리서치의 정당별 지지자들 남녀 구성비 데이터를 보면 민주당은 여성이 56% 남성 42%이다. 반면 공화당은 남성 52% 여성 48%이다.

이런 변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남녀 간 교육격차를 들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미국의 4년제 대학에서 여학생 수가 남학생을 처음으로 추월한 이후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 간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 2020~21 학사연도의 경우 4년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여학생의 비율은 59.5%, 남학생은 40.5%였다.

정치적 성향과 교육수준 사이에는 분명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고학력일수록 진보적 성향이 많고 저학력일수록 보수적이다. 물론 고학력 수구도 있고 저학력 좌파도 적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공감능력이 발달한 여성들의 유전적 특질, 그리고 억압과 차별의 경험들 또한 이런 정치적 성향에 투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방대법원이 낙태권 보장 판결을 뒤집은 것은 여성들의 ‘진보본능’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 판결이 나온 후 데이터 입수가 가능한 10개 주의 신규 유권자 등록을 보면 70%가 여성이다. 투표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겠다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각성의 첫 결과는 지난 8월 캔자스 주민들이 주 헌법의 낙태권 보호조항을 철폐하자는 헌법개정안에 퇴짜를 놓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정치 분석가들은 통상 공화당원들이 주 투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들어 개헌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했었다. 분노한 여성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안이한 판단이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대참패가 예견되던 민주당이 다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 데는 이 같은 ‘캔자스의 반란’ 덕이 컸다.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11월 선거가 민주당이 기대하는 대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들의 적극적 정치참여 없이 역사와 사회의 퇴행을 저지하기는 힘들다는 게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는 바이든 행정부의 남은 임기 2년뿐 아니라 미국사회의 장기적인 방향을 결정해 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사회질서의 변화와 개편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경사면에 세워진 자동차 뒷바퀴에 받쳐놓는 작은 고임목은 자동차가 뒤로 구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미끄러져 내리려할 때 여성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나가도 이를 저지해주는 든든한 고임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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