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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아비규환 이태원

2022-11-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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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교들이 천당과 지옥을 이야기하지만 특히 불교는 지옥에 대해 대단히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누군가 지옥에 가서 둘러보고 기술했을 리는 만무하니 그 구체적인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지옥에는 팔열지옥(八熱地獄)과 팔한지옥(八寒地獄)이 있다. 뜨거운 지옥 8개 그리고 차가운 지옥 8개이다. 우리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이야기할 때 쓰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는 말은 팔열지옥 중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이 합쳐진 문구이다. 지옥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합쳐졌으니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아비’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아비치(Avici)’의 음을 그대로 살린 말로 ‘무간(無間)’, 즉 간격이 없다는 뜻이다. 조금의 간격도 없이 쉴 새 없이 고통이 이어지는 지옥,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그 지옥에서는 옥졸이 죄인의 살가죽을 벗긴 다음 그 가죽으로 죄인을 묶고는 훨훨 타오르는 불 수레의 불 속에 싣고 다닌다고 한다. 그러니 고통이 어느 한 순간인들 덜 하겠는가.


‘규환’은 ‘울부짖음’을 의미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음을 멈출 수가 없는 지옥이다. 죄인은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거나 타오르는 불로 뜨겁게 달궈진 쇠로 된 방에 들어가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천지가 떠나가도록 울부짖는 지옥이다.

‘아비규환’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을 지옥의 고통에 비유한 말이다. 지난달 29일 밤 대한민국 서울의 이태원에서 지옥에 버금가는 참상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골목에 갇혀 떠밀려 다니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면서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무려 155명이 층층이 덮쳐 포개진 사람들의 무게에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니 그 끔찍함이 지옥보다 못할 수가 없다.

그날 오후 많은 이들은 마냥 들떠서 집을 나왔을 것이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핼로윈을 즐길 수 있다며 이런 저런 분장을 하고 신이 나서 친구들과 어울려 이태원으로 향했을 것이다. 대부분 10대와 20대인 그들 싱그러운 젊은이 앞에는 그런데 상상도 못할 종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외출한 아들딸이 밤늦도록 연락이 되지 않아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얼마나 애를 태웠겠는가. 그리고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155명 젊은이들의 부모와 형제는 지금 살아서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태원 압사사고 소식을 들은 미주한인들은 대부분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핼로윈 열기가 그렇게 뜨거웠는지 실감을 못하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에게 가장 낯선 날은 핼로윈이었다. 10월 중순이면 집집마다 핼로윈 장식을 하고 핼로윈 날이면 코스튬을 입고 “트릭 오어 트릿!”하며 다니는 풍습이 한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들 있는 집에서나 아이들 재미있게 해주기 위해 따라할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조기유학 붐이 일면서 핼로윈이 차츰 알려지다가 2010년대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나게 파티하는 날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 많은 이태원이 핼로윈 파티의 중심지가 되어왔다.

핼로윈 주말 이태원에 10만 명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경찰은 대비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특히 붐빌 구간들을 정해 일방통행으로 인파를 분산시키고 차량을 통제하는 등 뭔가 준비를 했어야했다.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소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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