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잔소리꾼이다. 직업병인지 모르겠다. 법률 조언을 들으러 오는 클라이언트에게 하던 버릇이 나도 모르게 일상생활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알면서도 못 고친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렇다.
몇 주 전 내가 보조교사로 자원봉사하는 성인 ESL 수업이 팬데믹 상황 하의 비대면 수업에서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어 개강했다. 수업을 위해 미국인 성당까지 어두운 밤 시간에 운전하고 다녀오는 게 부담되지만 학생들을 가까운 공간에서 만나 수업을 진행하니 조금 더 친근감과 실제감이 들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책임자로부터 개강을 바로 앞두고 연락이 왔다. 내 수업 바로 전에 영어회화 수업이 있는데 혹시 몇 주 만이라도 추가로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저녁 시간을 비워 두었으니 한 시간 정도 더 하는 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회화 수업은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게 없이 당일 주어지는 토픽을 놓고 몇명의 학생들과 대화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이런 수업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서슴치 않고 도움 요청에 응했다.
이렇게 해서 첫 날 세 명의 학생들을 만나 45분 정도 대화를 가졌다. 그런데 그 대화에서의 상당 부분이 그만 나의 잔소리가 되고 말았다. 직업병이 발병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우연히 모두 남자였다. 60대의 엘살바도르 출신 하나, 그 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아래의 브라질 사람,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20대 말의 중국인이었다. 엘살바도르 사람은 미국에 온지 20년 가량 되었지만 나머지 둘은 미국에서 산 지가 그 보다 훨씬 짧았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의 이 첫 수업에서 어떻게 영어를 공부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학생들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장황하게 설명했다. 매일 영어 사용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 영어 사용 기회를 더 많이 늘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누가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적극 찾아 나서야 한다. 가능하면 영어로 뉴스를 들어라. 도서관에 가서 쉬운 책부터 찾아 읽어라. 초등학교 1학년 수준도 좋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영어로 전달해 보아라. 단 몇 문장이라도 매일 작문을 해 보아라.
그리고 쓴 내용을 영어 잘 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고쳐 달라고 해라. 부단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 기왕 공부하는 김에 잘 하자. 이 모두 그들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일 텐데 나는 거침없이 뱉어 댔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내가 얘기한 것 중 어느 부분을 실천에 옮겼는지도 물어 보겠다라는 협박도 덧붙였다. 다행히 학생들 모두 내 잔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드린 듯했다.
또 다른 잔소리 기회가 한 달 전 쯤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다. 그 날 보호자 입장으로 밤 늦게 응급실을 가게 되었다. 환자의 혈압과 체온 측정 후 피검사를 비롯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담당 간호사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와 몇 마디 인사 정도 나누었는데 자신만 혼자 마시는 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내가 딱해 보였는지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어 왔다. 원래 잠을 잘 못 자는 내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보여준 친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커피를 받아 든 나, 이 간호사에게 감사 표시로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미국에 온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아 판단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아마 당신이 떠나온 조국 필리핀 보다 거주 환경이나 직업적 발전 가능성에 있어 미국이 낫지 않겠나.
그리고 혹시 같은 간호사인 부인 사이에 애들도 낳고 키울 거라면 애들 키우는 데 이 지역만큼 좋은 곳도 찾기 힘들다. 필리핀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내가 이 젊은 남자 간호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매너 만점인 이 간호사는 잠자코 들은 후 내가 응급실을 떠날 때 미국에서 오래 산 이민자 출신으로부터 격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감사했다고 인사를 건네 왔다. 물론 인사치레였을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응급실에서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타고난 잔소리꾼인 것 같다. 못 말리는 잔소리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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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