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밀하게 여행을 꿈꾸다
얼마 만에 혼자 가보는 여행일까. 한 달 전, 아니 올 봄부터 마음속에 숨겨놓은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은 8월이 되서야였다.
19년 전 이민 온 이래,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주변의 강과 산과 바다로 하이킹과 캠핑을 다니기도 하고 여름이면 짧은 휴가를 이용하여 멀리 다른 주나 이웃 나라까지 가 보기도 했지만 늘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총각 때는 산이 좋아 한국의 곳곳의 좋은 산들을 찾아 동료들 혹은 혼자서도 누비고 다녔었고, 30년도 더 지난 그때도 유럽의 몇 개 나라들을 홀로 배낭을 메고 다녀보기도 했었지.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은 가슴 깊은 곳의 앨범 속에 있다가 문득 떠오를 때면 잠시나마 행복함에 빠져들곤 한다. 여행이란 이런 거지….
이제 아이도 자라 집을 떠나 없어 마누라랑 달랑 둘뿐인데, 어찌된 일인지 캠핑이나 하이킹 같은 것은 따라 나서려 하지 않고, 편안한 여행만 추구하는 것 같아 나 역시 여행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올봄, 마눌님이 9월에 고국의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러 간다기에 나는 그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은밀하게 홀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 호텔 방에서 남녀 사랑 소리가 요란
7박 8일. 이만큼의 시간을 이용해 어디를 다녀오랴…. 결국은 항공편을 이용해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것으로 정하고 BWI에서 출발하는 프런티어 에어라인을 부킹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부킹 사이트에서 일정에 맞추어 호텔을 예약하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매일 관광할 곳을 찾아 검색하고 예약을 마무리 하였다.
나는 아침 9시쯤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조금은 들뜬 마음을 다독이며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두시간 반 후에 콜로라도 덴버에 도착하여 네 시간 정도를 머무는데, 이참에 덴버 시내구경이라도 해야겠죠. 그래서 공항에서 바로 연결되는 전차를 타고 20분 정도 걸리는 덴버 Union Station에 도착, 또 다른 여행객과 서로 사진 찍어주기를 하고 마침 전동 스쿠터가 길가에 있어 해가 쨍쨍 내리쬐는 덴버 시내를 두루두루 구경했다.
마침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저녁 일곱 시로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공항이 넓고 복잡하여 출구조차 못 찾고 헤매다 물어물어 청사 밖으로 나와 다시 전철 티켓을 사고자 물으니vending machine에 가서 Clipper라는 card에 $10어치를 사면 몇 번이고 쓸 수가 있다 한다.
저녁 아홉시 반에 check in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밖으로 나와 식당을 찾아보니 모두 닫혀있어 물어보니 대다수의 식당이 아홉시면 문을 닫는다 한다. 겨우 차이나 타운에 있는 허름한 곳을 찾아 칭타오 맥주와 함께 짜슈면을 먹으니 이 또한 별미다.
건축한 지 백년 남짓 된 호텔은 차이나타운 인근에 있는 곳으로 별 세 개 급이라 하지만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방에 새벽 무렵엔 꽤나 정렬적인 남녀 간의 사랑하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요란하다.
# 요세미티에서의 감동
다음날 아침 여섯시에 요세미티 관광을 하기 위하여 예약해 놓은 버스($189)를 타러 호텔 앞에 서있으니 두 명의 아가씨가 서 있어 인사를 나누니 한명은 스위스에서, 또 한명은 이태리에서 왔다는데 미국시민인 나보다 영어들을 더 잘 한다.
요세미티를 향한 버스가 Oakland Bay Bridge를 건너니 막 떠오르는 햇살이 동네 어귀에 심어진 야자수들 사이로 언덕위에 세워진 예쁜 집들의 지붕위에 뽀얗게 부셔지는 광경이 아름답기도 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버스는 어느 쇼핑센터에 머물러 승객들에게 트레일 하이킹에 필요한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라 하는데 특별히 충분한 물을 준비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아시다시피 이 지역은 매우 건조해서 산불이 잦은 만큼 야외에서의 흡연이 금지되어 있고, 우리 몸속의 수분도 증발이 빨라 조금의 활동에도 쉬이 탈진한다고 말한다.
다시 버스는 구비구비 가파른 산길을 한동안 올라 Tuolumne Grove라는 곳에 내려 두어 시간의 Giant Sequoias 숲을 점심과 함께 산책을 겸한 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 Yosemite Valley로 이동하여, 폭포와 계곡을 잇는 트레일을 산책하며 이처럼 위대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Yosemite 안에서 그가 주는 이 새롭고 신비로운 영감과 감동을 충분히 받고 열두시간의 걸친 첫 일정을 마친다.
# 금문교와 크루즈
일정 둘째 날은 흐리고 다소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이지만 오전 일정으로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로 정했다. 호텔에서부터 2마일의 거리를 걸어서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걷다 문득 은행이나 상업 간판 등엔 어김없이 한자가 병용되고 있었고 대다수가 중국인이며 마치 미국인이 이 속에 들어와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열시에 오픈하는 미술관 앞에는 벌써 줄이 서있고, 25달러를 내고 들어가 때론 뒷짐 지고 때론 팔짱을 낀 채 꽤나 진지해 보이는 태도로 관람하며 지적 수준을 다소 업그레이드 했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나왔다.
이층 버스에 몸을 싣고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Fisherman’s Warf라는 곳에서 내리니 유서깊어 보이나 무척이나 운치있어 보이는 상점들이 San Francisco bay를 앞에 두고 즐비하게 들어 서있다.
드디어 크루즈가 시작된다. 부두를 떠나며 울리는 뱃고동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는가 싶더니, 배 뒷머리엔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가득 들어오는데 언덕위로 예쁜 집들과 등대와 모던한 빌딩들이 멋지게 어우러져 펼쳐지고, 다시 배 앞머리로 얼굴을 향하니 태평양에서 시작한 거세고 차가운 바람이 금문교 사이로 불어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실로 들어갔음에도 나는 얇게 입은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며 이 장엄하고 놀라운 광경을 보고자 뱃머리에서 이 바람을 다 맞이해 본다.
배에서 내려 다시 이층버스를 타니 이젠 금문교 위를 질주하여 맞은 편 전망대에 내려주어 사진 찍기에 분주하고, 나는 짬을 내 Golden gate 위를 한동안 걷다 돌아오니 타고 온 버스는 속절없이 떠나버려 다음 차편까지 30분 정도를 그곳에 머물며 말 그대로 Golden Gate와 San Francisco의 전경을 실컷 보았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한식당을 찾아가 보니, 나만 한국인 듯 싶고 종업원과 손님까지 모두가 이방인인데… 아니 나만 이방인일까? 어쨌든 뜨거운 순두부에 돼지불고기와 함께 소주한잔을 걸치니 피곤함이 확 사라지는 것 같다.
# 태평양 해안가를 달리다
셋째 날은 Muir Woods and Sausalito를 89달러에 다녀왔고 넷째 날은 태평양 해안절경을 따라 내려가는 14시간의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다녀왔지만 제한된 지면상 더 쓰지 못한다.
다섯째 날은 꼭 해보고 싶은 일로 동트기 전 일어나 러닝 슈트와 슈즈를 신고 지난밤 지도에서 짜놓은 코스를 뛰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서니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든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숲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량을 헤치고 달리는 이 기분을 달려 보지 않은 자들이 어찌 아리오.
2마일 정도를 달리니 San Francisco Pier(선착장)가 나오고 Bay를 끼고 Fisherman`s Warf 향할 땐 마침 해가 떠오르는데 말할 수 없는 환희가 가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왕복 6마일을 달려도 여느 때보다 지치지 않고 상쾌한 기분은 역시 샌프란시스코여서 아닐까….
예순 한살에 홀로 나선 여행은 기대 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온 것 같아 다음 여행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번엔 마눌님을 어디로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