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미래에 보내는 편지

2022-10-26 (수)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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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셨던, 10년 전 작고하신 선친의 평생 작업을 기리는 도록을 세상에 내고자 하는 바가 목적이었다. 도록 제작은 돌아가시자 마자부터 시작했다. 허나 생각만큼 빠르게 도록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동료분들과 제자, 친구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의 학예사님, 관장님, 가족들의 도움으로 전시 오픈과 함께 도록도 세상에 공개되었다.

대전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골프존 꼭대기층 아트센터 쿠에서 10월 6일 유작전을 오픈하였고, 공식적으로 전시를 통해 고인 작품과 시민들과의 고별 기회도 마련될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작품은 여전히 특유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들을 뿜고 있었고, 아버지를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가 남기셨던 글들을 되짚어 보았다. 작품 전시를 하시면서, 작가 활동을 하시면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셨던 아버지는 그닥 많은 글을 남기시지는 않았다. 단편적인 도록의 머릿글, 1-2년마다 하셨던 전시 오픈 인사글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작가로서의 고뇌나 생각, 작품의 의도 등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글들은 자식으로서 잘 알지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어 개인적으로도 소중한 기록들이었다.


그중에 삼형제 모두에게 따뜻했던 아버지 글은 원고지 두 장에 적힌 섬에 대한 에세이였다. 아버지는 생전에 섬을 찾아 참 많이도 떠나셨다. 그때는 아버지의 취미가 낚시였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더랬다. 오래된 아버지의 필적으로 원고지에 쓰여진 ‘섬’에 대한 글을 찾아냈을 때의 감흥이란! 아버지와 섬으로 갔던 즐거웠던 여름 여행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호도라는 서해의 한 섬에 도착한 밤에 보았던 수많은 해변의 게들, 쏟아질 듯 빛나던 별, 빛이라곤 하늘의 별밖에 보이지 않고 한없이 파도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바다. 섬의 단하나 민박집에서 갓잡아올린 소라, 게, 생선으로 한상 차려 주시던 저녁밥, 태풍으로 갑자기 올라탄 배에서 무섭게 흔들리며 토하던 기억, 엔진소리, 구역질 나던 기름 냄새 등, 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삼형제는 떠오르는 추억에 젖었다.

나도 이렇게 글을 가끔이라도 써서 아이에게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나 나의 삶의 흔적을 글로 남겨주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소소한 일상들을 글로 적어 미래의 아이와 나누는 게 참 근사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저 글을 쓸 때 한번도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나에게, 또는 내 동생들에게는 행복한 기억을 상기시켜준 아버지의 선물처럼 여겨지며, 참으로 감사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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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원씨는 현재 한국혁신센터에서 한국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여가시간에는 캘리포니아의 미술 전시와 소박한 맛집 탐방을 즐긴다.

<김선원(한국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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