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태종(太宗)은 널리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실시했는데 급제한 인물의 외모, 말솜씨, 글, 판단력, 즉 신언서판을 평가하여 최종 결정을 하였다.
여기서 외모(身)란 인물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품격과 진실성이 드러나는지, 말솜씨(言)는 이치에 맞고 조리 있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서(書)는 글로써 자기의 생각과 철학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 판(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아마 당 태종은 과거 급제자와의 면담에서 질의 응답을 통하여 임기응변의 능력을 보고 신언서판을 평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자(荀子)는 불구(不苟) 편에서 ‘군자는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용모가 거칠지 않으며, 아첨하지 않고 말을 잘하되 어지럽지 않고, 변론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살피면서도 격렬하지 않다. 그러나 소인(小人)은 말마다 항상 믿음성이 없고, 행동마다 항상 곧음이 없으며, 오직 이익있는 곳이면 기웃거리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군자에 가까운가, 소인에 가까운가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물취이모(勿取以貌)라는 말도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어 말이 어눌하다고 해서 어리석거나 지혜롭지 못하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한비자(韓非子)는 말을 더듬어 많은 군주들에게 외면 당했지만, 그가 주창한 법가사상을 논하는 글이 논리 정연하여 진시황은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천하통일에 그의 이론을 활용하였으며, 제나라의 안영(晏嬰)과 초나라의 손숙오(孫叔敖)는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외모였으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반면, 나라를 좀먹고 망하게 한 역대의 간신들은 대부분 말은 간교하게 잘하나 뒤로는 사익을 탐하는 음험한 자들이었다.
612년, 수양제(隋煬帝)는 113만대군을 이끌고 장수 우중문(于仲文)의 30만 정예 대군을 선봉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수나라 군대를 게릴라식 전투로 괴롭혀 지치게 한 다음 우중문에게 ‘그대의 귀신같은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기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통달하였소.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라는 시(詩)를 보냈다*. 우중문은 이 시가 자신을 조롱하는 시인지 모르고 기고만장 하였다가 을지문덕의 계략에 말리게 되었고 고구려군과의 계속되는 전투로 극도로 피곤하고 굶주린 그의 군대는 퇴각하다가 살수(청천강)에서 고구려군에게 전멸당했다.
을지문덕은 적장의 심리를 뒤흔드는 글(書)과 지략(判)으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물리쳤으며 결국 이 전쟁에서의 패배는 수나라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을지문덕의 이 위대한 일화는 신언서판의 인재가 나라를 지키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고등학교 1학년 윤리 과목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칠판에 큰 글씨로 身言書判 네 글자를 쓰시고 이 말을 가르치셨다. 그 때는 따분한 옛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하여 마음에 새기고 수양의 기준으로 삼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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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