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이 끝나고 드디어 가을야구가 시작된다. 162경기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한 팀들 가운데 리그 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여섯 팀씩이 가려졌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프로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기나 긴 정규시즌동안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동서와 남북을 가르며 장장 162경기를 치르는 것은 가을야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야구는 프로선수들에게 자존심이고 자신들의 커리어를 규정해주는 시그니처가 된다. 위대한 선수들은 위대해서, 그리고 평범한 선수들은 평범하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의 영광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은 몸값보다 우승가능성이 있는 팀을 골라 계약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올 가을야구는 한인 야구팬들에게 한층 흥미롭게 됐다. 전통적 강호들은 물론 한인선수들이 뛰고 있는 팀들이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나서기 때문이다. 2020년 단축시즌 월드챔피언인 LA 다저스는 정규시즌 최고 성적으로 일찌감치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또 대표적 빅 마켓인 뉴욕의 두 팀도 플레이오프에 나란히 진출했다. 한국 출신 김하성이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최지만이 뛰고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도 와일드카드로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았다.
야구는 스포츠들 가운데 가장 예측이 힘든 종목이다. 변수들이 너무 많이 작용한다. 특히 플레이오프는 단기전이기 때문에 변수들의 영향이 정규시즌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이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와일드카드가 도입된 1995년 이후 총 13개의 와일드카드 팀이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으며 이 가운데 7개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월스트릿의 분석가인 마이클 모부신은 자신의 책 ‘성공 방정식’(The Success Equation)에서 야구와 농구, 축구 등 5개 스포츠 종목 가운데 야구는 운이 개입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경기라고 밝혔다. 경기의 속성과 리그의 구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만큼 약팀이 강팀을 이길 가능성이 타 종목에 비해 크며, 리그 1위 팀의 승률도 축구나 농구 등에 비해서는 낮다.
실력이 있고, 또 노력을 한다고 해서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 야구다. 야구에는 그만큼 행운이 많이 작용한다. 잘 맞은 타구가 잡히기도 하고 빗맞은 공이 안타가 되기도 한다. 열심히 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경기가 야구다.
한 스포츠 베팅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언더독이 강세 팀을 이긴 업셋 발생 확률은 41.6%에 달했다. 이는 NBA(32.1%)나 NFL(34.2%)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이처럼 야구에서는 다른 종목들보다 업셋이 더 자주 일어난다. 그런 만큼 일단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면 정규시즌 성적은 홈경기 어드밴티지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정규시즌 최고 승률 팀인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야구의 이런 특성 때문에 가을 야구에서는 가장 뛰어난 팀이 아니라 가장 뜨거운 팀, 그리고 가장 운이 좋은 팀이 우승한다는 말이 있다. 와일드카드 팀들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그래서 “가을 야구는 실력이 아니라 운명”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내가 실력을 갖추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약간의 행운이라는 충분조건이 따라 줄 때 성공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야구는 인생과 크게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디어 7일부터 야구팬들이 고대하던 플레이오프에 돌입한다. 과연 ‘야구의 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 선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야구팬들의 가슴은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