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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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 러시아, 왜 이러나?

2022-09-3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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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춥고 어두운 겨울밤, 끝이 없는 설원에 새하얀 자작나무숲, 그 속을 걸어가는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가 보인다. 몽환적인 기차 역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표정으로 걸어가는 안나. 얼어붙은 창가 책상에서 곱아오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원고를 써내려가는 닥터 지바고...

이 나라는 톨스토이의 나라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차이코프스키의 나라이자 라흐마니노프의 나라, 마르크 샤갈의 나라이다.

그런가 하면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일어났고 이후 70년간 공산주의를 추종, 오늘날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분단시킨 요인을 제공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요즘 긴장 상태가 고조되고 있다.


아빠와 마지막일 지도 모를 이별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 아빠, 안녕, 꼭 돌아오세요...”
얼마 전, 러시아의 한 어린이가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가는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다가 흐느끼는 동영상이 급격 확산되면서 전 세계인의 가슴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9월21일 예비군을 대상으로 부분적 동원력을 내린 것이다. 러시아 전국에서 반대시위가 열리고 징집을 피하고자 국경지대에는 러시아를 떠나려는 차량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7개월 동안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겪고 열세인 전황을 만회하고자 푸틴은 약 30만 명의 규모의 동원력을 내리고 지금은 핵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 러시아 당국이 핵사고 대비약품 요오드를 대량 주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요오드화칼륨은 방사선 유출 등으로 인한 응급상황 발생시 방사성 요오드가 갑상샘에 농축되는 것을 막아 인체 기능을 보호해 주는 약품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과 동맹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이 핵전쟁이야말로 승자가 없는 다같이 망하는 길임을 서로 알고 있다.

핵무기가 얼마나 무서운 지는 1945년에 우리는 보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를 폐허로 만든 그 잔인한 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지만 오늘날의 핵전쟁은 전 세계를 파멸시킬 가능성이 있다.

히로시마 중심부에 있던 수천 명이 재가 되었고 4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도 화상을 입었고 시속 900Km 충격을 동반한 폭풍이 불면서 반경 3Km 넘은 지역안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버섯처럼 솟아오른 구름으로부터 크고 무거운 물방울이 검은 비가 되어 내리며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피폭자들은 얼굴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시커멓게 변했으며 얼굴의 모든 형상이 녹아내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길이 3미터의 우라늄 폭탄과 나가사끼에 떨어진 플루토늄 폭탄은 수많은 인생을 파괴시켰다.

1942년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에 대한 기습으로 정복 전쟁을 시작한 일본, 전쟁 초기에는 잇달아 승리했으나 전세는 바뀌었고 3년간 치열하고 희생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연합군은 일본 점령지인 섬을 하나씩 탈환했다.

진주만 공격 3년 8개월만에 죽을 때까지 싸우자던 일본은 핵 한 방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 시인 산끼지 도게는 히로시마의 생존자로 1953년 3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시 ‘아침’의 한 부분이다.

“꿈을 꾼다/ 곡괭이 든 손을 쉬는 노동자는 꿈을 꾼다/ 갈라진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에 싸인 채/ 재봉틀 위에 엎드린 아내도 꿈을 꾼다./게의 다리처럼 화상으로 쭈그러진 양팔을 감춘 채/ 표를 파는 소녀도 꿈을 꾼다/ 유리 파편을 목에 박은 채 성냥 파는 소년도 꿈을 꾼다/...화약의 1,000만 배, 1g에 1,000만 마력의 에너지가/ 원자 속에서 인간의 손으로 옮겨져/ 인류의 평화 속에서/ 풍요한 과학의 열매가/ 탐스럽게 줄기에 매달려 있는 포도송이처럼/ 이슬에 젖어 안겨있는 아침을 꿈꾼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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