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미 향기

2022-09-24 (토) 김영화 토랜스
작게 크게
갑자기 더워진 6월의 이른 아침이다. 창문을 활짝 여니 영롱한 이슬이 맺혀있는 장미 향기가 바람에 밀려들어온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는 매일 아침 듣는 클래식 음악보다 신선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아침 산책을 나온 동네 사람들도 한결같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많은 장미들에게 코를 들이대며 향기를 맡고 간다.

장미는 색깔과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에 따라 향도 매우 다양하다. 흰 장미는 청순한 은방울꽃 향이, 코발트색 장미는 달콤한 과일향이, 붉은 장미는 고혹적인 스파이시 향이 장미 고유의 플로럴 향과 함께 느껴진다. 꽃집에서 파는 장미보다 우리 집 장미 향기가 특별히 좋은 것은 아마도 남편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집 장미동산의 장미들은 남편이 품종이 좋은 연필 굵기의 장미나무 가지를 전지해 와서 2~3일 동안 물에 담가두었다 모래흙에 6개월 정도 키운다. 하루에 2시간 정도의 햇빛이 드는 곳에 두고 2~3일에 한 번씩 물을 준다. 뿌리를 내리고 새싹이 나와서 꽃이 피기까지 6~18개월 걸린다. 수없이 실패하며 공부하고 실험해서 한 송이의 아름다운 장미가 탄생한다, 천연비료를 만들고, 병충해를 치료하며 장미 정원을 만들어 ‘영화 장미동산’이라 이름을 붙여 내게 선물했다. 대부분의 장미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사는 아들 집 정원에서 전지해왔다. 첫째 손녀 성격을 닮은 진노랑, 둘째 손자를 닮은 빨강, 셋째 손녀를 닮은 진분홍 장미 이름을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며 조석으로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어디서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장미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 동네 사람들에게 남편은 자신이 정성스럽게 키운 장미들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장미 전도사다. 그가 만든 천연 비료와 병충해 예방, 치료 방법을 가르쳐준다.

사람들의 왕래가 좀 뜸해진 한낮에는 벌, 나비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날아오고, 허밍 버드는 살포시 날아와 뾰족한 주둥이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볼을 만지듯 비벼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조심해야할 때에 산책하는 수많은 동네 사람들과 벌, 나비, 그리고 허밍 버드까지 수시로 장미에 코와 입을 대고 간다. 개와 고양이도 장미 향기가 좋은 지 한참 앉았다 간다.

지난주 일요일은 우리가 교회에 모시고 다니는 권사님의 90세 생신이었다. 사랑이 많은 권사님은 장로님의 아내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신실하신 권사님으로, 그리고 의사 친구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소아과 의사로 사셨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무료로 치료해주며 평생을 베풀며 사셨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손들이 주는 돈을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행복해하신다. 그녀의 입에서는 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말이 떠나지 않으며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유머도 풍부하시다. 그녀에게서는 장미향기가 난다.

노란색, 분홍색 장미를 꺾어서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드리니 고상하신 권사님은 아기처럼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셨다. 그 꽃을 앞에 놓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장미 향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모두가 꽃보다 아름다운 권사님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축복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장미마다 제각기 다른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저마다 고유의 향기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모난 것 없이 아름다운 향기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향이 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한 번에 확 사로잡는 향이 있는가 하면 튀지는 않아도 그 속에 잔잔한 매력이 있는 향도 있다. 그 향이 내면적 충만함과 따뜻한 품성으로 향수처럼 퍼질 때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 달콤한 향기와 풍성한 꿀을 가진 꽃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듯이 따뜻하고 사랑스런 사람에게는 사람이 따르게 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향기로 온 동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우리 집 장미처럼 될 수 있을까?

<김영화 토랜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