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25살에 즉위하여 70년간 권좌를 지키다가 지난 9월8일 96세로 생을 마감했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애도한다. 그동안 15명의 총리를 임명했다. 임종 하루 전에 신임총리 리즈 트러스(Liz Truss)를 임명한 것이 마지막 공식행사였다. 맏아들 찰스 왕세자가 Charles III로 즉위한다.
영국은 의회민주주의를 안정시킨 대표적인 나라지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를 회고한다. 첫째 1215년에 군주 존이 대헌장(Magna Carta)을 반포함으로써 국왕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인권보장책을 선포한다.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선언이다.
572년 후에 만들어진 미국 헌법에도 인용했다. 14th Amendment; No State shall deprive any person of Life, Liberty, or Property without due process of law가 그것이다. 대헌장은 법이 아니고 국왕의 약속이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이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영국은 헌법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헨리 VIII(1509-1547)세 같은 법 위에 군림한 독재자도 경험했다. 부인이 6명이나 된다. 첫 번째 부인 캐서린 아르곤은 스페인의 Ferdinand II of Aragon의 공주로서 헨리의 형 아서와 결혼한 헨리의 형수였다. 국민의 존경을 받던 왕비다. 헨리는 Anne Boleyn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앤은 결혼 전에는 접근하지 말라고 완강한 자세를 보인다.
왕비 캐서린이 이혼을 안 해줄 거고 캔터베리 주교도 허가하지 않을 거라고 하자 앤이 말한다. “당신이 임금인데 누구의 허가가 필요하냐.”
헨리가 구상한 것이 천주교에 구속될 게 아니라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성공회(Anglican Church)다. 모든 의식은 천주교와 같다. 교회의 수장이 국왕이며 주교를 자신이 임명하는 제도에서 이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캐서린과의 결혼은 혼인 무효(Annulment)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앤을 두 번째 왕비로 맞이하는데 성공한다. 본인이 임금이면서 교회의 수장인 제도는 지금도 그러하다. 정경분리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법리는 영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시 전 유럽의 종교가 가톨릭일 뿐 아니라 교황이 국왕 위에 군림하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헨리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었다.
결혼생활은 너무나 짧았다. 3년도 안 되어 앤을 단두대로 처형한다.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가 말한다. 그렇게 공들여 얻은 앤도 싫증이 난 모양이다. 앤이 오빠와 간통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사형에 처한다. 그때 헨리는 다른 여자 Jane Seymour와 정분을 나누고 있었고 앤 처형 11일 만에 제인과 결혼한 걸로 보아 Jane이 Anne의 처형 이유였을 것으로 의심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산군 같은 악마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제인은 결혼 17개월 만에 사망한다. 헨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아주고 간 것이 헨리의 후계자를 마련해주기 위한 결혼이었던 셈이다.
헨리 VIII세 부터 지난 주에 서거한 Elizabeth II까지의 왕위(Throne) 계승을 회고한다. 헨리가 1547년 죽자 제인이 낳은 9살 된 에드워드가 왕위를 잇지만 6년 후 병사한다.
헨리의 첫 왕비 캐서린 아르곤이 낳은 딸 메리(1553-1558)가 왕위를 계승하는데 Mary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반대파에서는 Bloody Mary라고 불렀다. 아버지 헨리가 세운 성공회를 말살하고자 온갖 핍박을 가한다. 최소한 280명을 화형으로 죽였고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탈출했다. 1558년 사망했는데 자궁암이었을 거라는 설이 있다. 천주교 국가로 되돌려 놓고자 그토록 잔인하게 국민을 탄압한 피(Bloody)의 여왕이란 이름을 남기고 떠난 여인이다.
다음은 헨리가 단두대로 처형한 앤의 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하는 아이러니가 현실로 등장한다. Elizabeth(1558-1603)가 당시 세계 최강국가의 초석을 다진 여왕이 됐음을 알았다면 헨리가 얼마나 놀랐을까를 상상해본다. 국가의 운명도 이렇게 우연한 사건으로 갈릴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엘리자베스의 영국 함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Armada invincible)와의 결전을 1585년에 영국해협에서 치른다. 이때까지는 지중해와 남미의 대부분을 장악할 정도의 해군력을 보유한 스페인이 세계 최강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이었다. 해군력을 총동원한 영국과 스페인의 무적함대의 결전은 5대양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결전이다. 해전의 결괴는 영국 해군 백명이 전사한 반면 스페인은 2만명의 해군 병력과 전함 51척을 잃었다. 영국은 5대양, 6대주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려지는 시작이다. 영국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와 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포함한 54개국을 영 연방제국에 포함시킨다. 캐나다를 포함한 15개국은 아직도 영국의 임금을 그들의 국가 원수로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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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탁 / 변호사/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