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칸사 조상묘역에서 추석 성묘를 마치고 뉴저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간지점인 600마일 쯤 되는 곳에 주유소 겸 편의점 하나가 있었는데 기름도 넣고 커피도 사 마실 겸 들렀다.
커피 끓이는 테이블 위에는 콜럼비안 커피를 비롯해서 아라비안, 브라질리안, 헤이즐넛 등 여러 종류의 커피가 따로 따로 포트 속에 들어있었는데 그 중 콜럼비안 커피를 큰 컵에 가득 따라 우유와 설탕을 좀 넣은 후 계산대로 가져갔다.
팔에 문신을 한 체격 좋은 백인 종업원은 나를 향해 ‘That’s it(그겁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You are good(됐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의아해서 얼마냐고 다시 금액을 물었더니 ‘It’s free(무료에요)’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이 큰 커피를 공짜로 주다니...
그러고 보니 그 휴게소에는 특이한 점들이 많았다. 화장실이 매우 크고 깨끗할 뿐 아니라 세면대의 수도꼭지는 다른 데처럼 물이 감질나게 조금 나오다 곧 끊겨버리는 센서 식이 아니고 틀면 트는 대로 계속 물이 나오는 수동식이었다.
벽에는 고속 핸드 드라이어가 두 대 달려있었고 그 옆에는 페이퍼 타월 디스펜서까지 있어 사람들이 둘 중에서 골라 쓸 수 있도록 하였다.
가장 특이한 것은 화장실 안에는 토일렛과 유리날(소변기) 이외에 샤워 부스가 세 개 설치되어 있었는데 부스 문에는 ‘Relax. Enjoy Your Free Shower (천천히 무료로 샤워하면서 쉬어가세요).’라고 쓰인 큼직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샤워를 무료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도 열시간 이상 운전한 터라 몸이 찌뿌드 하긴 했지만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대형 트레일러 기사들은 몇날 며칠밤을 대륙을 누비며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샤워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여러 날을 운전석 뒤의 좁은 공간에서 잠도 쭈그리고 잤을 테니까.
가게를 나서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사방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는 30 피트 대형 트레일러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이곳은 트럭 운전사들한테는 그야말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다가 오아시스를 만나 낙타에게 물도 먹이고 풀도 뜯기면서 다음 여정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길 위의 낙원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니겠는가. 메마른 인정의 사막 한가운데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깨끗하고 시설 좋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넓고 쾌적한 현대식 건물 안에는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각종 음식을 골고루 파는 으리으리한 푸드코트가 들어서 있고 호텔 뺨치는 청결한 화장실에는 칸마다 온수와 온풍이 나오는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다.
대륙 횡단을 하기위해서는 꼬박 4일을 운전해야 하는 큰 나라 미국에 한국과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 보았다. 그러나 40번 고속도로변에 외롭게 서있는 소박한 이 미국 시골의 휴게소에서 그날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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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