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너무 예쁜 그대가 되리

2022-09-16 (금)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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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입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옷장을 훌러덩 뒤집어놓더니 신발장도 여지없이 난장판이다. “왠 수선이야?” 핀잔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머리를 볶고 지지더니 뻔한 얼굴엔 찍어 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그리고 귀걸이에 목걸이며 팔찌까지 나름 “샤방샤방, 나는 여자이니까!”

‘왜, 그랬을까?’ 젊어서 그랬을까? 그땐(뇌출혈 수술 전) 그랬다. 꾸미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배려보다는 나 하고 싶은 대로 나만 좋으면 좋았고 내면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잘 차려입고 그저 예쁘고 싶었었다.

이곳 파라다이스로 이사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났고 이웃 사촌으로 만났으며 스포츠 센터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맺어진 이곳 새 터전 파라다이스에서 사귄 따듯한 새 친구들이 제법 많아졌다. 미국사람 독일사람 태국사람 그리스사람 중국사람 라오스사람 거기에 우리 한국사람까지.


오늘은 한가위날이다. 고국의 한가위를 떠올리며 언니네 집에서 추석맞이 파티를 했다. 나라를 초월하여 너나없이 무엇이든 나누고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우리의 한가위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초대받아 오는 친구들의 손마다 제각기 정성 들여 만든 음식에 사랑하는 마음까지 듬뿍 담아와 커다란 테이블 가득히 이것저것 진수성찬이다. 인절미 생선부침 닭튀김 잡채 해파리냉채 갈비 청포묵 찹쌀쌈밥 샐러드 총각무김치, 집에서 따온 복숭아며 자두, 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라 음식들 …
휘영청 둥근달이 우리들의 추석 파티를 한층 아름답게 밝혔다. 웃고 떠들고 행복이 우리들 서로의 가슴에 둥근 보름달되어 떠올랐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오~~~” 중국 친구의 선창으로 아리랑도 불렀다. 언젠가 내가 가르켜준 아리랑을 용케도 잊지 않고 선창해 모두를 즐겁게 했다. 유쾌하고 센스가 많은 친구 덕분에 한가위가 보다 풍성해졌다.

순수함! 이곳에 이사 와서 처음 느낀 이전과는 다른 이웃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진실되고 꾸밈없는 진지함과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따뜻함으로 서로 손잡고 함께 울고웃어줄 줄 아는 사람들. 꾸미고 가꾸고 사치를 즐기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마냥 부끄러웠다. 쓸데없는 욕심과 남과의 지나친 비교 때문에 내 부족함을 감추려고 과장되게 포장했는지 모른다. ‘인생은 짧다, 고로 나는 즐긴다’ 내가 즐겨 쓰던 예전의 인생관?!

한가위도 저물어간다. 새삼 오랜 옛 친구가 생각이 난다. 미워했던 일, 곱지 않았던 말투, 진실성 없던 위로들 참 미안했다. 이제는 겉치레보다는 가슴이 따뜻하고 서로를 돕고 위로할 줄 아는 순수한 내가 되어야지. ‘인생은 짧다, 고로 진실되게 살자’ 저 멀리 보름달이 빙그레 웃는다.

<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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